brunch

나의 메모 역사

나만의 저장공간이 필요해

by 내민해

평소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읽고 싶은 책, 좋았던 문장, 좋아하는 대사 등등 여러 가지 잡다한 문장들을 어릴 때부터 핸드폰 메모장에 차곡차곡 모아두곤 했었다. 하지만 목적과 계획 없이 무작정 모아둔 말들은 쉽게 휘발되고, 심지어 내가 그것을 메모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했다. 정작 필요할 때 '아 그때 가려고 적어뒀는데, 거기가 어디였더라'처럼 어떤 키워드로 적어두었는지조차 잊고 더듬더듬 기억을 찾다가 포기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의 메모 습관은 그저 몸에 익은 하나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이것저것 일관성 없는 정보들이 산재되어 있다 보니 정작 필요한 내용을 찾을 때마다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부터 조금 더 체계적인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간을 통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두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는 것은 모아둔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껴왔던 것 같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은 누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마중물 같은 책이다. 저자는 글쓰기라는 창작의 원리를 설명하며, 글을 쓰기에 앞서 자료를 찾으라고 말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져 자료를 추려 놓는다. 또 버스에서 시집을 보다가 관련한 단어나 괜찮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틈틈이 생각의 단초를 풀어놓는다. 문장 단위로 사고하고 단락으로 정리하며 매만진다. 마치 나무를 잘라 놓고 대패질을 해 놓듯이 말이다. 그 단락들을 요리조리 배열해 놓고 잠든다. 꿈에서 사유를 불어넣는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고친다. 어느새 글 한 편 완성된다. 큰마음 먹기가 아니라 짬짬이 해 나가기의 결과다.


-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동안 쌓아뒀던 정보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좋은 문장들이다. 이건 정말 오래된 습관인데 어릴 때부터 드라마, 영화, 책 등 좋아하는 대사를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하곤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터치도 아니어서 손으로 자판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가며 소중하게 간직했던 대사들이 꽤 많았고, 심지어 만화책의 좋은 대사들도 꼭 적어두곤 했다. 하지만 그때 모아뒀던 나의 메모들은 핸드폰을 교체할 때마다 마치 유행이 지난 헌 장난감들처럼 나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곤 했다. 당시에는 감동적이었던 구절들이 나이가 들면서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버리는 것이다. 그때는 핸드폰 용량도 작았고, 클라우드라는 것도 지금처럼 상용화되지 않았던 때라 메모장 용량의 한계로 새로운 내용을 더할 때마다 이전 내역을 지워야만 했다. 그렇게 하나를 채울 때마다 하나를 지워나가며 잃어버린 기억들이 점점 늘어갔다.


나의 메모 역사는 꽤 길다. 지금은 어느 정도 다듬어진 방식으로 메모를 정리하고, 하나의 기록물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거친다. 저장 공간은 하나로 통일했는데, 바로 비공개 블로그다.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간에 제한이 없고, 카테고리별로 분류가 자유로우며, 기기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굉장히 편리하다. 덕분에 블로그의 기록들은 쌓이고 넘쳐 온갖 잡다한 내용들을 담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규칙 속에서 찾고자 하는 정보들은 충분히 검색이 가능하며, 속도가 느려지거나 용량이 초과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아이디어와 글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