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도의 사람일까
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특히 낯선 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에게는 꼭 한번은 듣고 넘어가는 수식어다.
착해 보인다. 따뜻하다. 좋은 사람이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한 가지 걱정이 올라온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그렇게 따뜻하지도, 착하지도, 좋은 사람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남들이 생각하는 수식어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렇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온도차 때문인데, 나는 온도차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나타내는 더 정확한 수식어는 위의 단어들도 맞지만 바른 사람, 합리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관계를 계산적으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옳고 그름은 명확하게 따진다는 뜻이다. 아닌 관계는 단호하게 끊어낼 줄 아는 용기랄까.
그래서 관계에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성은 만남과 연락의 빈도가 아닌, 적어도 소통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으려 노력한다는 의미의 정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계의 깊이보다 함께한 시간에 더 중요도를 두는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곤 한다. 좋게 말하면 편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 관계에 게으름이 생겨난 것이라 생각한다.
관계의 게으름은 그 대상에 따라 일찍 찾아오기도,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문제는 그 게으름이 찾아왔을 때 상대방의 태도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제 우리 사이면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니야?'라고 되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상대이거나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정성을 다하는 상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후자인 경우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고, 전자의 사람들은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 끊어냄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험한 말을 듣기도 했고, 울면서 붙잡는 사람도 있었고, 너는 얼마나 대단하냐고 재수 없다는 듯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온도는 차갑게 식는다. 애초에 따뜻함라는 단어가 나에게 없었던 것처럼 손에 닿기만 해도 얼어버릴 것처럼 차갑게 말이다. 나의 낯선 모습에, 극명한 온도 차이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실 그 모습은 나도 종종 놀란다.
'이렇게 차갑다고?'
나는 생각보다 나약한 사람인 것 같다. 정신과 마음이 육체를 지배하는 느낌이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반대인 것 같다. 마음에서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이 뭘 해도 내 눈에는 아닌 게 되어버린다. 식어버린 마음은 아무리 내가 나를 다독이고, 회유해 봐도 방법이 없다. 이건 마치 썸으로 치자면, 한번 아닌 사람은 뭘 해도 아닌 심리라고 해야 하나.
조금 뜬금없는 예지만, 그래서 나는 이성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면 그 사람에게 더는 먼저 연락하지도 않고,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민망해서라기보다는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가가는 나의 모습이 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고,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특히 관계에 있어서 한번 아닌 것은 계속 아니다라는 게 내 지론이다.
처음 관계를 단절했던 것은 19살 때부터 나와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는데, 관계가 변했다기보다는 당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왜 그토록 쉽게 용인되고, 심지어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잘못했다 말했었는지 후회가 된다. 그 후에는 조금 더 단호해졌다. 따뜻했던 온도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차갑게 식어버리거나, 참았던 감정이 한 번에 치고 올라와 온도계 자체를 날려버렸는지도.
관계란 참 어렵다. 답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
관계에 있어 나에게 적당한 온도란 몇 도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