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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05. 2022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지속하는 것이다

나만의 루틴이 있나요?

작년 한 해 스우파의 열기가 뜨거웠다. 춤 잘 추는 언니들의 매력적인 모습에 여러 영상을 찾아봤던 기억이 떠오른다(특히 립제이님). 나는 그분들을 보며 나와 다른 세상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그저 감탄만 했었다. 아마 그 이유는 타고난 나의 몸치력 덕분일 테지.


중학교 체육시간에 팀을 나눠서 자유주제로 춤을 췄던 적이 있다. 우리는 당시 유명했던 댄스가수의 춤을 모티브 삼아 우리만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 팀의 블랙홀이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열심히만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회사에서 우스갯소리로 듣는 말이 있죠. 열심히만 하면 되나, 잘해야지). 시험 점수는 나쁘지 않았는데, 아마도 체육 선생님은 우리의 실력보다 노력을 보셨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흠) 체육 선생님은 열심히 준비한 우리의 모습이 대견하다며 각 팀의 춤추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으셨다. 시험이 끝나고 반에서 다 같이 그 영상을 돌려보는데,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기괴한 나의 몸짓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뭐 춤도 아닌 것이, 행위예술도 아닌 것이... 뭔가 몸으로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뒤로 춤과 나는 철저한 거리 두기를 약속했다.

안녕, 부디 행복하렴.


이쯤 되면 몸치였던 내가 춤을 꾸준히 연습해 춤꾼이 되었다는 스토리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예술적 재능은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았고, 몸치인 나와 춤 사이에는 감히 욕심내서는 안 되는, 바라만 봐야 하는 선명한 선이 존재했다.


대신 다른 것을 골랐다. 조금 바꿔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뻣뻣한 나와 차분한 나를 결합시켜 다른 것을 잘하고 싶었다. 우선 나는 타고나길 혈액순환 자체가 잘 안 되는 몸이라 조금만 아프면 금방 몸이 붓거나 저리곤 하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도 유연함이 필요했다. 유연함에는 잘하고 못하고 보다 꾸준한 반복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시작한 것이 스트레칭이다. 춤은 감각과 움직임, 순발력 등을 필요로 하지만, 스트레칭은 일단 느리고(이 부분이 가장 나답다), 꾸준히 하다 보면 몸이 점점 이완되고, 늘어날 테니 충분히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스트레칭 역사는 길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족히 10년은 넘게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유명한 스트레칭 영상(강하나 스트레칭 같은)을 보고 차근차근 따라 하다가 동작들이 점점 익숙해진 후로는 여러 영상들 중에 나와 잘 맞는 동작들로 구성한 30분 정도의 스트레칭 루틴을 만들었다. 매일은 못해도 많게는 주 5일, 적어도 주 3일 이상은 꾸준히 지속해왔다.

반복적인 동작만 몇 년째 반복하다 보니 조금 지겨워지던 찰나에 작년부터는 '빵느'라는 유튜브 채널의 스트레칭에 꽂혀 그것만 반복하는 중이다. 빵느님은 스트레칭보다는 필라테스와 다양한 근력운동 영상을 주로 올려주시는데, 조용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어려운 동작들을 무리 없이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이분의 영상은 운동도 운동인데, 명상도 되는 느낌이다. 목소리 톤 자체가 차분해서 가만히 스트레칭하고 있으면 머리도 같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명상을 진행하셔도 정말 잘하실 것 같고, 유튜브 채널 설명에 '내 몸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라는 슬로건 자체도 너무 좋다.


네이버에서 브랜드 경험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도영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기획자의 독서>에서 습관과 루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선 습관은 의식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생겨나기도 합니다. 남이 발견해 줘야만 뒤늦게 습관인 줄 알아차리는 것들도 있죠. 또한 좋은 쪽으로 길러지기도, 나쁜 쪽으로 굳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습관입니다.
반대로 루틴은 좋은 결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행동들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스포츠를 떠올리면 아주 쉬운데요,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기억해 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하는 모든 것이 루틴에 해당합니다.
(중략)
사실 루틴을 만들기 가장 어려운 이유는 지루함과 막연함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데서 오는 지루함 그리고 '과연 이렇게 한다고 내가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막연함 때문이죠. 그래서 루틴은 누군가가 만들어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본인의 방법으로 본인에게 맞는 루틴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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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도 나만의 루틴 만들기를 통해 삶을 밀도 있게 채워가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해놓고, 잘하는 것은 지속하기 싫은 경우에도 하나의 루틴으로 만들어 나를 더 단련시키기도 한다. 스트레칭은 의외로 내가 잘하는 것에 속했다. 유연함으로 무슨 경쟁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은 꽤 유연해져서 웬만한 동작들은 잘 따라 한다는 뜻이다. 덕분에 친구들이 근육통으로 가끔 몸이 뻐근하다거나, 갑작스럽게 담이 걸려(응?)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간다는 류의 고민들을 털어놓을 때도 공감은 어려웠지만, 위로는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루틴'이라는 용어가 누명을 쓰고 있어, 단순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들로만 생각하거나 징크스 혹은 미신(?)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는 김도영 작가의 말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무언가가 주는 힘을 쉽게 봐서는 안된다. 그 진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휘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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