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제주의 날씨는 안녕한가요.

현요아 작가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리뷰

by 내민해

나는 꼭 책이 아니더라도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책뿐만 아니라 브런치에서도 매일 글을 읽는다. 이곳에서 글을 읽다 보면 나와 결이 맞는 작가님들을 보물처럼 만나게 되는데, 어떤 작가님은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하는 중에 책을 출판하기도 하고, 이미 책을 출판하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도 있다.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전자인 줄 알았는데, 후자였던 작가님이 집필한 책이다. 그녀의 글은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이라는 브런치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내가 글을 읽을 당시만 해도 곧 출판을 앞두고 있었다. 불행 울타리가 자기 연민으로 단번에 해석되기는 어려워 출판사와의 고민 끝에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7월 11일, 드디어 그녀의 책이 출간됐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현요아 작가의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가 출간됐다. 이 책은 가족의 죽음으로 자살 사별자가 된 한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금기시되는 죽음 뒤에 가려진 남겨진 이의 상처와 회복에 대한 담담한 서술을 통해 개인적인 고통이 보편적인 슬픔과 울림으로 번지는 모습을 목도하게 한다.


책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얼리 서평단에 곧바로 신청했고, 당첨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얼마 뒤 집 앞에 도착한 택배 상자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작가님의 책이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칼로 조심스럽게 택배 상자를 열고 책을 펼쳐보는데, 작가님의 메시지를 읽고 퇴근 후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나의 이름을 본인의 필체로 꼭꼭 눌러 담은 메시지를 읽었을 때의 행복함이란!

하지만 그 행복함도 잠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눈물을 꾹꾹 참으며 한 글자씩 적어 내려 갔을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서였을까.


"형제분 되시나요?"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곧 극존칭을 썼다. "조그만 사고를 쳤어요"하고 너털웃음을 지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되물었다. "어디로 돌아가요? 걔가 어디로 돌아가요?"


갑작스러운 동생의 부고 소식에 아프고 힘들었을 마음을 내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녀는 그 마음을 덤덤한 필체로 눌러 담아 자신만의 위로를 건넨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니 정말 모순적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삶에 이토록 다정한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를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특히 쓸모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 때는 나의 약점을 들킨 것만 같아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쓸모에 대해 곱씹고 증명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1인분의 삶을 살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다. 꼭 좋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더라도 사람이라면 적성 하나는 꼭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좋아하는 걸 찾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세상을 다 꿰뚫은 듯 떠벌리고 다녔다. 서른이 되기 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면 미련 없이 떠나야겠다는 얘기를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몇십 년이나 살았는데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멋지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자랑이라고 하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내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중략)
사람이라면 1인분의 그릇을 채워야 한다고 여기시나요. 혹시 쓸모 있는 사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어른의 쓸모는 누가 결정하나요.


어릴 때부터 행위로써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사람은 자신의 쓸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쓸모를 다한 이는 가차 없이 버려질 수 있다는 못된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외쳐도 그 말들은 그저 귓가에 맴돌 뿐 흡수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말은 또 다른 의미의 치유였다. 어른의 쓸모는 누가 결정하냐는 그녀의 일침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지난 나의 과거를 짚어보았다.

삶이 유독 고통스러운 날들이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죽음 이후의 삶은 평안할까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녀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끊임없이 전한다. 그 선택지에 죽음이라는 보기는 영영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능력이 있다는 얘기, 기억하시죠. 그 선택지에 죽음이라는 보기는 영영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한번 선택지에 들어가면 때때로 그 보기가 답인 것처럼 머릿속을 명확하게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 선택지를 애써 지워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하니까요.
저도 고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마음 한편에 고이 놓아 뒀던 선택지를 영영 택하지 않겠다고요. 자살력이라는 단어 역시 원래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듯 머릿속에서 지워 보겠다고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가장 슬펐을 그녀가 이제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타인의 상처를 돌보게 된 그 마음은 내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우리의 삶은 마치 불행 배틀을 이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아픔이 가장 무겁고 아프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우리에게 되려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선택지를 여유롭게 만들고 고를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삶에 애착이 있다고 읊조리며 자신이 받은 응원의 메시지를, 긍정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낙관을 담은 흔하고 평범한 메시지는 사람들이 자주 쓰므로 문장에 담긴 효력이 전부 발휘되지 않는다고 여기기에.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낯설고 흔하지 않은 긍정의 메시지를 탄생시키는 순간 뿌듯함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긍정이 샘솟는다는 것을 배웠다. 삶에 애착이 있다는 읊조림처럼 문득 힘이 나 몸을 일으키게 되는 순간, 이전에 받은 사람들의 응원이 지금의 나에게 닿았다는 자신만만한 확신처럼.



나는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매주 업데이트되는 그녀의 글을 브런치를 통해 여전히 읽고 있다. 오랜 기간 그녀의 글을 읽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그녀가 내 옆에 존재하는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던 글이 뜸해지면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까지 하게 된다. 그녀의 삶 자체를 궁금해하는 독자가 돼버린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삶을 직간접적으로나마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현요아'라는 작가를 더 알아가고 싶다. 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책은 정말 다정하다. 그녀만의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밀도 있게 담겨있는데 그 안에 희망의 메시지가 콕콕 숨어있다. 귀엽지 않은 빌런들에게 조차 다정한 만큼 풍족해진다고, 빌런을 해하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도 큰 울림이 되어준다. 미움에 휩쓸려 자신을 지우지 않고, 흐릿해지는 좋은 사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겠다 말하는 그녀의 다정함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웃겨서 웃은 것뿐이다. 웃음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행 울타리에서 한 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웃음에는 자격이 필요 없다. 그저 웃으면 된다. 나는 그녀에게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나의 삶에도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웃음에도 자격이 필요한가요, 작가님?
그렇다면 작가님은 그 자격이 충분한 분이세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다.

지난주 일요일 교보문고 광화문점 전시월에 그녀가 찾아왔다. 미리 약속을 잡지 못해 차마 직접 인사를 건네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말았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그녀의 팬들과 대화를 나누며 연신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잘 살아계셔서 참 다행이라는 말을 혼자 속으로 되뇌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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