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내버려 두세요. 제발
참고로 이 글은 식문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저만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혹 불편하신 분이 계시다면 단호하게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내 나이 바야흐로 33살. 옛날 같았으면 이미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을 나이. 이제는 어디 가서 어리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애매한 나이다. 직장 생활은 이직의 기간도 있었지만, 대략적으로 8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 기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점심 식사다. 왜 그렇게 혼자 밥 먹는 것을 싫어하는지, 더 나아가서 무서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오래고, 바쁜 사회생활 하물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조차도 혼자 밥을 먹어야, 아니 때워야 하는 시간들은 일상에 널리고 널렸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도 각자의 생활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밥 먹는 시간이 다른 순간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내 경우는 혼자 독립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부분 중 하나가 밥을 편하게 혼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애써 불필요한 대화거리를 찾을 필요도 없이 묵묵히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식사하는 그 고요한 시간들이 미칠 듯이 행복했다. 심지어 지금은 밖에 나가서도 혼자 먹는 밥이 사실 가장 맛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이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
직장에 가면 사람들이 인사말처럼 늘 주고받는 말이 있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야지?
약속 없으면 우리 오늘 같이 밥 먹을래?
그놈의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나는 왜 그렇게 싫을까.
아니 혼자서는 밥도 못 먹나? 꼭 누구랑 같이 먹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혼자 먹는 게 좋다고 몇 번을, 정말 몇 번을 수도 없이 말한 것 같은데 계속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그 모습이 이해가 안 간다. 이쯤 되면 기억할 법도 한데, 이쯤 거절당하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틈만 나면 기회만 되면 그렇게 꾸준히 질문을 던진다는 게 이제는 의아하다 못해 화가 난다. 나 같으면 하도 거절당한 게 기분이 나빠서라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 쟤는 그냥 혼자 밥 먹는 게 좋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람들은 틈만 나면 묻는다. 정말 틈만 나면 말이다. 그래서 그 틈을 주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담백하게 흩어지면 될 것을 인사 끝말에 꼭 그 말을 붙인다.
근데 우리 밥 한번 먹어야지
그 마지막 말이 듣기 싫어서 스치듯 인사하고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내 거절이 부드러워서일까. 그들은 눈치도 없이 여전히 나에게 묻는다. 지겹도록 말이다.
나는 나의 시간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에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내어줄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내 시간을 허락한다. 그만큼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에게 나의 시간을 양보할 만큼 이 만남이, 이 식사가 의미 있다면 거기에 응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단호히 거절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업무의 연장선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사회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에 1시간이나 투자하고 싶지 않다. 그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읽고,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생각을 하면서 평화롭게 즐기고 싶단 말이다. 나의 이 말을 그들이 당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의 김신회 작가는 역시 밥은 혼자서, 조용히 먹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며 본인을 구내식당 덕후라 칭한다.
오늘은 혼자 구내식당에서 먹겠다고 하면 왜 딱하다는 표정을 지을까. 당신들은 왜 한 사람의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방해하는가. 왜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를 쏘겠다며 나대는가. 안 얻어먹고 싶은데 나는? 점심만이라도 혼자서 조용히 먹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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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들도 있다. 나는 그 순간이 싫다. 그 어색한 기류의 빈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대는데, 그 가벼움도 싫고, 무엇보다 그 가벼운 대화거리를 내 입으로 뱉어내는 게 싫다. 말이라는 것은 무거웠으면 하고, 안 하느니만 못한 말들을 굳이 떠들어대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후회하게 될 의미 없는 공허한 말들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한없이 가볍고 깔깔거리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먹는 것에 대한 훈계질이다.
한국은 유독 음식에 대한 간섭이 심하다. 내가 밥을 손으로 먹든, 발로 먹든 그것은 내 자유일 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하고, 뭐가 그렇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아서 내가 먹는 음식의 종류, 반찬의 가짓수, 양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자신들의 의견을 떠들어대는지. 언제 궁금하대? 내가 궁금하다고 말했냐고. 심지어 가르쳐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사방이 선생님들이다. 다들 엄청난 교육자들 나셨다 정말.
특히 나처럼 보편적인 입맛(단짠, 자극적인 음식,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질문과 권함을 받는다.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는 나의 모습을 독하다고 칭하며 그렇게 살면 몸이 건강하지 않다나 뭐라나. 몸에 안 좋은 음식도 적당히 먹어야 면역력이 생긴다나 뭐라나. 이건 마치 한 반의 꼴등이 1등에게 공부 방법을 훈계하는 것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건강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그저 입맛에 맞는 음식만 찾아서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건강이 나빠졌다고 징징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심함을 넘어 화가 난다. 거기다 살쪘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한다면 정말이지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근데 그런 당신들의 모습은 뒤로한 채 채식과 절식을 균형감 있게 맞춰서 계획적으로 섭취하는 나에게 건강을 운운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김지선 작가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는 에세이에서는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에게 식사란 주유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녀를 위한답시고 무수한 동정과 권유를 해왔다. 왜 안 먹냐, 먹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다, 도대체 인생의 즐거움이 뭐냐, 기타 등등. 그녀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다."라는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먹지 않은 인간에 비해 먹는 인간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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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음식을 입에 구겨 넣는 것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건강한 음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곰곰이 제대로 생각해 보고 서로에게 예절을 갖춘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요즘 주위만 둘러봐도 온갖 맛집에 각종 조미료에 자극적인 마케팅에도 소비자들은 아무런 의식 없이 그저 맛만을 운운하며 그 문화를 따라가고 신봉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고, 몸이 고장 나면서 그동안 자신의 식습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성인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두려워 밥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닐 나이는 지났다. 음식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식사예절에 대한 문화도 함께 성장했다면 좋았으련만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