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씩은 겪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18살 이야기

by 내민해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내 것과 에이미의 파우치가 바뀌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때때로 일은 그렇게도 시작된다. 내가 일부러 만들어 내지 않아도 무언가 거대한 움직임에 엮이고 만다.
아니, 별 의미 없이 솟구쳐 있는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일파만파 일이 커지다가 급기야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우연히 벌어진 일이니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잠시 변명도 해 보지만, 다디단 거짓말에 취해서 독이 든 성배인 줄도 모르고 내 의지로 마셨으니 이 일은 오로지 내 책임이다. 우연히 벌어졌지만 이 일은 어쩌면 내겐 꼭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애인지 알 수 있게 됐으므로.
- 청소년 소설 <숏컷 中>


아득한 기억인데, 다시 떠올리려고 하니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학창 시절의 우리는 별것 아닌 일들로 쉽게 토라지고 서로를 미워하곤 했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암흑기가 있다면 그건 아마 18살일 것이다.


18살이 되던 해 반 배정이 시작되었고, 한 반에 적어도 4~5명씩은 다음 학년도 같은 반으로 배정되었다. 많게는 10명씩도 같은 반 친구들과 겹치는데, 놀랍게도 나 혼자만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2반으로 배정되고 말았다. 반 배정이 있던 날 2반 교실로 들어서는데, 아는 얼굴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같은 반에서 올라온 아이들끼리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많았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나 혼자만 섞이지 못한 채 조용히 구석자리에 앉았다.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나와 2반에 함께 올라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다. 나는 2년 연속 같은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18살이 시작되었다.


다른 학교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온 학창 시절 여학생들의 문화는 대체로 그룹을 지어 놀았다. 각반에 여러 개의 그룹이 있었고, 그 그룹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개는 혼자 겉돌기 마련인데, 너무 자연스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실 18살 전에도 나의 작은 체구 덕분에 새 학기가 되면 종종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의 놀이처럼 나를 화장실에 가두거나 끌고 가서 괴롭히기도 했다)

새로 배정된 2반에서 차라리 다들 처음 만난 상태라면 또 모를까 이미 친해져 있는 그룹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고, 심지어 나는 당시 여고생들의 관심사인 연예인이나 유행하는 또래 문화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더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그 반에서 겉돌기 시작했고, 그나마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났던 것은 몇 개월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을 꽤 자주 보이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반에서 내가 사귄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에 그 관계를 놓을 수가 없어 괴로웠다. 여고생들의 미묘한 감정싸움은 나에게 참 어려운 숙제였다. 내가 다른 친구와 조금만 더 친해진다 싶으면 그 친구는 나에게 삐쳐서 앙갚음하듯 대놓고 나를 따돌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알아맞혀 보라는 듯 행동하곤 했다. 18살의 나는 애써 괜찮은 척 가면을 쓴 채 반 안에서 계속 겉돌았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고등학교 3년 중 가장 낮은 성적을 받으며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곤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시기의 나는 대놓고 왕따는 아니었지만, 다들 은근히 꺼려하는 은따였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지옥 같았고, 장난치듯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있는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무렵 옆반에서 한 아이가 자살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전교생을 이름순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반에 배정되었던 적도 있는 아이였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그 친구도 대놓고 왕따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없어 반에서 겉돌았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 더 마음이 아팠다. 그 사건으로 한동안 학교가 소란스러웠고, 바로 옆반이었던 우리 반은 숙연하게 그 학기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격동의 시기를 잘 견디고, 다음 해가 되어서는 암흑에서 서서히 빛을 보게 되었다. 새로 배정된 반에서는 지금도 나와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17년 지기 친구와도 같은 반이 되었고, 그 외에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관계의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친구들과 주말에도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나와 빈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등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새로운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도 개의치 않고, 혼자 이것저것 잘할 만큼 독립심이 강해졌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가 인생의 전부인 나이였고, 공부에 지나치게 영향을 끼칠 정도로 관계에 예민했으며 자존감도 낮았다. 혼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덜컥 두려움부터 생겼던 아이였다.

(지금은 혼밥을 가장 좋아하지만, 당시에는 혼자 밥 먹는 일이 생기면 차라리 굶어버리곤 했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내곤 하신다. 엄마에게 그때의 사건들은 내가 자퇴라는 말을 최초로 꺼낸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온 인생이 흔들릴 만큼 꽤 심각했던 1년이었다. 나의 여러 일기장들 중에 18살의 일기장만큼은 삶에 가장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주기적으로 읽어보곤 한다. 어떤 일도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