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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면 충분하다

나를 표현하는 언어

by 내민해

올해 초 gaga77page라는 망원동의 독립서점을 혼자 다녀왔다. 보통 독립서점은 대형서점들과 달리 작은 공간의 책장에 일정하지 않은 배열로(주인장 마음)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기 마련이다. 그곳에서는 주로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데, 독립출판물은 제작부터 출판까지 작가가 스스로 만들다 보니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작가의 취향이 묻어난 투박한 외형에서 그 책만의 고유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독립출판의 매력이다.


gaga77page라는 독립서점은 그동안 내가 가봤던 여러 독립서점들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규모가 컸고,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오수영 작가의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라는 책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독립 서적은 아니었지만, 책의 제목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 몇 번을 들춰보다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작가의 부드럽고, 섬세한 문체에 당연히 여성일 거라(나의 깊은 편견) 생각했다. 이름도, 직업도 여성에 가깝다고 느꼈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책을 한참 읽다가 작가가 남탕에 들어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그가 남자였다는 것을 말이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오늘은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말하고 싶었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진심이라는 것이 때로는 오용되어 무기로 착각하고 휘두르는 이들도 있으니,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써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수영 작가가 말하는 진심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관계가 무기력하게 끝이 났는데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고, 고객들은 이미 돌아섰는데 우리는 진심만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었다는 말을 해봐야 결국은 행동하지 않은 변명이 될 뿐이다. 사실 사람들이 변명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일삼는 말이 바로 '진심'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그만큼 사람들은 진심이라는 말의 영향력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은 진심은 단지 나를 알아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무력하다.
게다가 그것을 언어만으로 능수능란하게 전할 수 있는 솜씨를 갖지 못했다면 차라리 그 진심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는 게 좋은 순간들도 많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분명 행동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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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매사에 되도록 열심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뭐 그냥 대충 해도 되고, 마음을 담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태도의 기반인 것 같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성을 많이 쏟는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고, 한 번 한 약속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려 노력하며, 만약 그것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키지 못할 때는 진심으로 사과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서일까.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슷한 결이 느껴져 마음이 잘 닿는다. 내향적이고 조심성이 많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굉장히 느린 편인데, 진심을 담은 사람들에게만큼은 그 속도가 빨라진다. 약 1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 오랜 기간 함께했던 분들도 있고, 이번 달에 처음 시작하신 분들도 있다. 무엇보다 이 모임에는 진심을 다하는 분들이 많다. 매일 부지런히 글을 남기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그분들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진심을 다해 그분들을 응원하고 공감하게 된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글로 소통한다는 것이 어쩌면 낯설게 느껴진다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서로의 진심이 닿기만 한다면 꼭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라도 얼마든지 그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가 다녀왔던 gaga77page라는 망원동의 독립서점이 올해 6월 서울시와 서울도서관의 동네 서점 지원 프로젝트인 '서울형책방'에 선정되었다. 2022 서울형책방으로 선정된 동네 서점은 총 60곳인데, 동네서점의 고유기능인 책 판매를 넘어 책을 기반으로 한 지역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운영과 오프라인 홍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10월까지 각각의 서점에서 직접 기획한 다양한 문화행사와 독서모임, 독립출판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데,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일정 확인이 가능하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동네 서점이 변화의 시기를 거쳐 지역의 책 기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며 서울형책방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기술이 발전해 갈수록 디지털기기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 세대는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씁쓸함이 올라오곤 했는데, 시민들의 독서 문화를 권장하는 서울도서관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주인장의 결을 닮은 동네 서점들만의 진심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쓰는 삶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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