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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어제와 다르게 살아간다

by 내민해

지난주 일요일, 오랜만에 나의 아지트 같은 동네 카페를 찾았다.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통창 너머 보이는 우이산의 모습을 배경 삼아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패터슨시에 살고 있는 '패터슨'의 이야기다. 특별하지 않은 패터슨의 담담한 일상을 일주일 동안 보여주는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그의 일상은 놀랍도록 반복적이다. 6시가 넘으면 눈을 뜨고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버스 안에서 승객들의 일상을 가만히 엿듣기도 하고,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마빈(강아지)과 저녁 산책을 하고, 단골 바에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런 그의 삶에는 항상 시가 있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들을 그의 비밀노트에 틈틈이 시처럼 적어 내려 간다. 반복되는 출퇴근 속 그의 일과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약간의 변주가 조금씩 담겨있다. 그 변주는 시를 통해 그의 시야를 확장시키며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패터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다. 나의 삶도 불안함과 지루함의 양가감정이 시소를 탄 것처럼 오르락 내리락하곤 하는데, 힘든 시기를 호되게 경험하고 나면 지루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심하게 앓고 난 뒤에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소셜섹터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오렌지레터'를 구독해서 받아보고 있는데, 받았던 레터에서 좋은 구절들을 발견하면 틈틈이 메모해두곤 한다. 오늘 나의 글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 있어 한 번 나눠보고 싶다.

어느 순간에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시나요? 시시콜콜한 내 얘기에 웃어주는 사람의 눈빛에,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아이스커피에 우리의 행복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큰 행복을 찾아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연해님 곁에 항상 머물고 있는, 별일 없이 사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날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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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매일이 이벤트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뜯지 않은 택배 상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을 열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일상의 평범함이 실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매 순간 배워가고 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반복되는 하루 속에도 일상의 범위를 조금만 넓혀 관찰해 보면 몰랐던 행복들이 곳곳에 숨어있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 틈틈이 시를 적어 내려 갔던 패터슨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도시 속 패터슨일지도 모른다. 가장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특별한 패터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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