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마음은 언제 찾아올까
브런치에서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 중에 '단단'님이라는 필명의 작가님이 있다. 그분의 작품 중 <단단한 마음으로 물렁하게 살고싶어>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이 있는데, 나는 이 시리즈를 참 좋아했다.
정말 멋진 사람을 안다. 말수가 적지만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재미있다.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 쉽게 감탄할 줄 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서지도 무너지지도 않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한껏 긴장하며 몸을 움츠릴 때 그는 살짝 몸을 움직여 기지개를 켠다. 날 선 감정 앞에서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든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그는 사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단단한 마음으로 물렁하게 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다.
- 단단님의 브런치북 소개글 중 일부
나의 모습은 겉으로 보이기에 단단해 보인다. 작년에 했던 TCI 검사 결과에서도 책임감과 목적의식, 절제, 독립 등의 점수가 높기도 했으니 말이다.
(TCI 검사란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의 약자로 현재 전 세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과학적인 검사다. 기존의 다른 성격 검사와는 달리 한 개인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 4가지와 후천적으로 발달된 성격 3가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검사다.)
반면에 예기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높게 나오기도 했다. 아마 이 두 가지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속으로 삼키곤 하기 때문에(유별나 보일까 봐) 지금껏 무난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단단 작가님의 소개글처럼 나도 단단한 마음으로 물렁하게 살아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물렁하기보다 조금 단순하게 말이다. 단순한 것이 별로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마 단순함을 가벼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단순함은 가벼운 것이 아닌, 순간에 더 집중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사는 것만이 제대로 된 삶이라 여겼던 것도 단순함을 생각 없음으로 치부했던 나의 편협함 때문일 것이다.
진화 생물학자인 레베카 하이스의 <본능의 과학>에서 저자는 다양성 본능에 개입하는 단순한 전략을 이용하면 '덜어내면 실은 더 많이 얻는다'라는 사실을 우리 뇌가 금방 깨닫는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일상에서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엄청난 불안, 불만, 결정 지연을 겪게 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본능은 사실 생산성 손실, 인간관계의 실패와 전반적인 불만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우리는 자주 레고와 비슷한 함정에 빠진다.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할 때, 우리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는지를 종종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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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단한 마음은 삶을 단순하게 여기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예상할 수 없고 확실하지 않은 문제에 지나치게 두려움을 느끼는 나는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생각하다 당장 내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 일 때문에 현실의 행복을 놓치고 부정적인 생각 흐름에 나를 맡겨버리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다가올 때면, 하나의 시나리오만 머릿속에 그려두고, '자 이제 그냥 넘어가자'라고 혼자 되뇌곤 한다. 어차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내 손을 떠난 일은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온전히 수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불안한 감정은 수시로 올라와 일상의 행복이 잠식당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저 현재의 시선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