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곳이 있을까
안전불감증의 사전적 정의는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둔하거나 안전에 익숙해져서 사고의 위험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증상이다.
그렇다면 반대말은 무엇일까?
안전민감증, 안전과민증, 안전예민증 등 다양한 표현으로 쓰이지만, 사전에 명확히 규정된 단어는 없다고 한다. 그나마 대중적으로 쓰이는 말이 안전과민증인데, 어떤 상황을 과도하게 염려하여 일상에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를 뜻한다. 예를 들어, 공사장 인근을 지나면서 혹시 벽돌이 떨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에 길을 멀리 돌아가거나 벽돌이 떨어지는 상상을 하고 그 후 벌어질 일들까지 과도하게 추측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즉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걱정을 확장시키는 것인데, 이런 증상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라고 한다. 지속될 경우 강박 증세로 이어지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로 구토, 설사, 두통까지 느낀다고 하니 평소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걱정을 내려놓으라고는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냔 말이다.
나는 범불안장애를 안고 있다 보니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안 좋은 상상을 꼬리물기처럼 이어갈 때가 많다. 처음 부모님 집에서 독립할 때도 가장 우려했던 점은 외롭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집안일, 혼자 아프면 어떡하지 같은 것보다는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였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과연 여자 혼자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
그래서 더 신중하게 살 곳을 고르고 골랐지만, 그럼에도 내가 예상치 못한 위험들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도 3년을 넘게 혼자 살면서 퇴근길에 쫓아오거나 계속 말 거는 남자, 늦은 밤 벨을 누르는 남자(인터폰으로 확인하고 조용히 숨죽였던) 등등 안전과 관련된 이슈들이 꽤 있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조금만 시장 쪽으로 가면 식당과 유흥시설, 모텔 등이 즐비해있어 최대한 빠르게 장을 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심신이 평안한 날에는 위험과 안전에 대한 예민 센서가 잘 켜지지 않는데, 유독 힘들거나 피곤한 날이면 나의 예민 센서는 평소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럴 때면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의미 부여를 하면서 혼자 불안해한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계속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미즈시마 히로코는 자신의 저서인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에서 '불안의 근원은 완벽주의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완벽을 지향하고, 완벽을 지향하는 것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선택지라는 것이다.
안경을 쓴 상태에서 열심히 '안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벗고 자기 자신을 보면 거기에는 '불안을 안고 힘들어하는 나'가 있습니다. 불안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불안해하고 있었다면 심정적으로 많이 지쳐 있겠지요. 이럴 때는 불안에 지친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면 어떨까요? 불안한 마음에 자신을 사정 없이 몰아붙이면 그러지 않아도 지친 나를 더욱 몰아세우게 됩니다.
알아. 다 알고 있다고. 근데 잘 안 되는 걸 어떡해.
안경을 벗어야 하는데 눈이 안 보이니까 자꾸 안경을 찾게 되는 걸 어쩌냐고.
그래도 나를 그만 다그쳐야겠지. 무서워서 떨고 있는 나를 괜찮다고 도닥거려주는 것.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무서운 게 당연하다고 속삭여주는 것. 오늘의 나에게 무서움 없는 세상, 안전한 세상을 인식시켜주기보다는 불안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배터리가 10% 밖에 남지 않은 날에는 우선 충전부터 시켜주고, 그다음에 차근차근 세상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 정신 차리라고 다그친들 더 무섭고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일단 배터리부터 충전해 주고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자.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무서운 일들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닐 것이다. 폐쇄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만큼은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잠들기 전 오랜만에 명상을 하면서 마음의 배터리를 완충에 완충으로 만들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