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냥 그럴 때가 있는 사람이야

자꾸 묻지 마요. 이유

by 내민해

나는 생각과 취향이 대체로 확고한 편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확실하고,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명확하게 정리하길 좋아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고민의 깊이가 달라지지 않고 무엇이든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는 편이다. 그런 나의 한결같은 모습 덕분인지 가까운 이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이미지는 신중한 모습일 때가 많다. 작은 행동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도덕적 기준이 높을 것 같은 선한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일들이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그런 상황이 있을 때도 있고, 그런 사람이 있을 때도 있다. 대체로 이런 즉흥적인 선택은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시작된 감정을 이성으로 쉽게 끊어낼 수는 없었다.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벗어날 수 없는 마음들이 올라오는데, 평소 나답지 않은 행동들로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연애를 시작할 때가 그랬고, 단순하게 시작되었던 감정이 사랑으로 연결될 때 그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알게 된 나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 하는 나이기에 연애도 사랑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그런 내 마음의 빗장이 활짝 열릴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깨달은 희한한 감정이었다.


뇌과학자이자 예리한 임상심리학자인 허지원 작가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저자는 나의 마음을 '왜'보다 '어떻게'에 더 집중하라고 말한다.


'왜'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 같은 것이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그것만으로 당신은 다 한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내가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들이 잦아지고 그 이후에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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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삶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왜'라는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음에도, 그 행동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할 것만 같아 의미 없는 '왜'를 부차적으로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예로는 소개팅의 예시를 들어보고 싶다. 솔직히 첫 만남에 상대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상대방의 어떠한 말과 행동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주선자가 추후에 상대에 대해 물어보면 이러쿵저러쿵 괜한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우리는 아닌 것 같다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인데 말이다. 근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외모지상주의자처럼 보일까 봐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없는 왜(성격, 가치관, 직업 등)를 애써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아 물론 이것은 저의 경험담이 아닙니다 흠흠)


조금 극단적인 예시였지만, 보통의 삶도 그러할 때가 있다. 사실 마음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졌는데 그 마음을 그렇게 정한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뒤늦게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느낌이랄까. 나도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다. 나도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끌려서 하는 행동들이 있는데, 누군가는 자꾸 나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래도 너라면 똑 부러지는 너만의 정답이 있을 것만 같다고 말이다. 나도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지르고 싶은 날이 있는 사람이다. 가끔씩 올라오는 나의 즉흥적인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나의 또 다른 자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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