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를 알고 나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다. 불쾌한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는데, 애초에 그것은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사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살면서 점점 싫어하게 되어버렸다. 처음 독립을 했던 곳이라 동네의 분위기까지 살피지 못 했던 것이 원망스러울 만큼 말이다. 주변 환경이 삶의 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서는 정신적인 건강까지 해칠 수 있는지는 이 동네에 이사 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동네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화가 나고 불쾌했던 순간들이 이해가 돼버렸다. 나만 느낀 불쾌한 감정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 여자들이 모두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이 동네를 걸을 때마다 나이 든 남자들의 시선이 나의 몸을 훑거나 따라올 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볼 때 느꼈던 그 감정들 말이다. 그 시선은 더럽고 불쾌했으며, 그들의 혼탁한 눈빛이 나를 오염시키는 것 같아 그들을 지나치고 나서도 한동안 불결하게 느껴졌고 온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더러움을 잊고자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입고 있던 옷을 탈탈 털어내고 소리치듯 역겨움을 토해내며 온 몸을 구석구석 씻어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모텔도 많고 유흥시설도 많다. 주변 환경이 이렇다 보니 길거리에는 홀로 가족도 없이 여자를 필요로 하는 나이 든 남자들이 많다. 그들은 술에 잔뜩 취해 풀린 눈을 하고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자연스레 관심은 타인에게 향하기 마련이고 그 만만한 대상이 바로 어리고 젊은 여자였다. 특히 늦은 밤 이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은 더 위험한데 나이 든 남자들이 술에 취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고래고래 소리치거나 싸우는 모습들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몸에 중심도 잡지 못한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이 내 쪽으로 점점 가까워질 때면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쩌면 그런 불쾌한 시선을 받는 일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동네 구조상 그런 남자들이 드글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족단위의 구성원보다는 개인이, 특히 돈 없는 개인이 살기 좋은 동네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친)오빠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람들 표정이 다 왜 저러냐고 물었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은 편이라 처음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더러운 눈빛과 무기력한 움직임들이 말이다. 처음 그것을 인식한 것은 늦은 밤 그들이 종종 나를 따라오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그들을 향한 불쾌한 마음이 피로가 쌓이듯 내 안에 계속 쌓여왔던 것 같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편했을 것을 한 번 보이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보였다. 나와 시선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내 몸을 훑어내는 그 더러운 시선들 말이다. 종종걸음으로 나를 따라오던 나이 든 남자들의 발걸음이 역겨워 가던 길을 급하게 돌려 뛰어가 보기도 했고, 연락 올 곳 없는 애꿎은 핸드폰만 멍하게 들여다본 적도 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계속 없으리란 보장이 없어 더 싫었다. 그들이 마음먹고 나를 덮치려 들 때 나는 과연 그들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어느새 내가 이 환경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었다.
한은형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레이디 맥도날드>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맥도날드 할머니는 매일같이 트렌치코트를 차려 입고 정동 맥도날드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노숙인으로 주변 환경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나쁜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이런 데 살면 나빠지는 거다. 엘리베이터와 화단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개똥을 길에 버리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가뜩이나 좁은 복도에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 정자에서는 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절대 양보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살면, 이렇게 나빠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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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내가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한 동네다. 그만큼 소중한 곳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애증의 관계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동네에 살면서 처음으로 동네의 분위기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처음 독립을 할 때는 자금 사정만을 고려해서 최대한 무리되지 않는 선으로 집을 찾았다면 이제는 주변 환경이 조금 더 맑고,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동네에 이사와 자리를 잡고 사는 동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한 가지 이유가 있었고, 이제 그 이유는 사라졌다. 나는 이제 이 동네를 떠난다.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판국에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살겠다는 희망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 이루지 못할 거라고 지레 겁먹고 꿈도 꾸지 말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이제 그만 이 동네와 나의 인연을 끊어낼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