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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Sep 22. 2017

#16. 엄마의 꽃 밭.  

[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엄마는 늘 바빴어요.

어린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이미지는, '힘이 잔뜩 들어간 뒷모습'이었습니다. 


살아 내야 했으니까요.

어린 딸을 혼자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했으니까요.


혈혈단신, 제 손을 잡고 이 세상으로 나와, '혼자 애 키우는' 여자가 된 엄마의 나이가,

지금 제 나이 즈음.이었습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고 희생.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진출처:pexels]


그때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 그리고 한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의 끝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으로 갈음되었습니다.


혼자 키워내야 했고,

그 하나 밖에,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 떠 있는 순간은 두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 해야 했어요.

일터 한켠에, 봐줄 사람 없는 어린 딸을 두고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둘만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은, 지치지만 제일 행복했을 거예요.

오롯이 둘만, 서로를 보듬어 안고 잠들 수 있는 그 시간만이, 엄마에겐 '쉼'이었을 겁니다. 


지금 내 나이의 그때 엄마가 되어, 고단했던 그 하루를 살아보니,

먹먹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사진출처:pexels]

 

그때, 서른일곱의 엄마는,

얼마나 막막하고 지치고,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어렸던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우뚝' 서 있었어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뒷모습' 이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만큼요.


먼 훗날,

훌쩍 커버린 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된 엄마는 그랬어요.


"힘들다고, 지친다고 생각하면 안 되었어. 그럼 모든 걸 포기하게 될 것 같았거든. 하루에도 수십 번... 나는 여자가 아니다, 엄마다...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어." 


대체 '엄마'가 뭐 길래,

본인의 인생이나 감정도 버린 채, 강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걸까요...


그렇게,

강한 생활력 하나로, 어린 딸을 키워 낸 엄마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아들 딸 들이 느끼는 거겠지만,

커버린 아들 딸들 눈에, 부모님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아요.


'우리 엄마 키가 저렇게 작았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서로의 세월을 가늠하게 됩니다.

내가 자란 만큼, 엄마는 한 없이 작아지고 힘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늙어버린 우리 엄마는, 어느새 다시, '여자'가 되었어요.


모든 어머님들이 겪는 갱년기를 한참 전에 겪었고,

'여자'가 되었다는 말이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살아 내느라, 키워 내느라 버리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시작하셨어요.


[사진출처:pexels]


난 우리 엄마가,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우리 모녀에게 꽃이라는 건, 입학식과 졸업식에 투박하게 건네는 색색깔의 꽃다발이 전부였고,

그저 티브이에서 남녀 주인공이 들고 있는 소품에 불과했거든요.


지나가는 길목에 꽃을 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지나쳐야 했어요.


그런데...

큰 수술을 하고 아프면서,  

하던 일을 잠시 쉬던 그때부터 였어요.


엄마는 집 앞에, 엄마만의 작은 화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꽃 화분을 발 디딜 틈 없이 놓아,

색색의 예쁜 꽃들을 키워내곤 했습니다. 엄마의 꽃 밭은, 그렇게, 5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좁은 집 앞, 술 마시고 휘청이다 화분을 깔고 뭉갠 적도 있고,

늦은 출근길 서두르다, 무성한 꽃 화분 엎어버리는 바람에, 등짝을 맞은 적도 있고요.


의도치 않게 엄마의 꽃 밭을 망쳐버린 날이.. 한두 번이 아니였습니다.


무심한 딸이 바쁜 사이, 엄마는 그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한 아름씩 키워내고, 또 지는 걸 바라봅니다.

다시 다른 꽃이 자라고, 그 꽃이 지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노라면,

어린 딸 때문에 버렸던, 젊은 시절 엄마의 삶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곤 해요.

비로소, 이제야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물론, 꽃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꽃 밭을 일군다는 하나 만으로, '여자'가 되었다고 할 순 없겠지만요.


저한테, 엄마의 꽃 밭은.

지금 제 나이의 엄마의 삶을, 다시금 피워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오곤 합니다.


[사진출처:pexels]


그렇게 고생한 엄마 생각하면,

진짜 잘 해야 하는데... 여전히 딸은 무심하고 지 혼자 잘난 맛에 바쁘기만 합니다.


마음 만은, 그렇지 않은 걸.

나 때문에 포기했던 모든 걸, 다시 시작하실 수 있게, 엄마의 꽃 밭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걸...

들릴 리 없는 엄마에게 전합니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예쁜 소국 화분 하나를 사 가려고 합니다.


집 앞에 소국 화분이 소담히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엄마와 함께 이 가을을 보내고 싶어요.




엄마의 꽃 밭이,

활짝 핀 꽃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망칠 수 없도록, 제가 지켜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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