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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Jan 09. 2019

#23. 잃어버림에 대한 몇 가지 단상.  

#1. 

가늠해 보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내 생일 즈음이었더라. 


내가 태어난 걸 축하해 주는 사람들의 온기 속에, 나는 행복했던 그때. 

당신은 눈을 감았다더라. 


"언제 돌아가셨어요?" 

.... 

"어디에.. 묻히셨어요?" 

....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너는 혼자 못 찾아갈 테니, 오면 같이 가잔 한마디뿐. 


내가 먼저, 

당신이 죽어도 난 몰랐으면 좋겠다. 고 얘기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당신은... 죽음조차도 끔찍한가 보다. 고 생각했고, 그래서 알리지 않았다 한다. 


나는, 소리치지도 못한다. 

그 어떤 원망도, 그리움도 쏟아내지 못한다. 

나에게 당신의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그렇게나 무심했다. 



원래 없었던 것인데, 

그래서 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없었던 걸 잃어버렸는데,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슬퍼하는 것도 못하는데... 


이 잃은 마음 길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문득. 자꾸 운다. 



열흐레쯤 시간은 지났고, 

나는 그냥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눈 뜨고, 씻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실없는 농 속에 크게 웃고, 친구들을 만나고, 잠을 잔다. 

그리고 가끔 하릴없이 하늘을 본다. 그리고 운다. 

사람들이 볼까, 눈을 가리고... 나는 그렇게 자꾸 운다. 




#2. 

당신의 부음을 들었던 그 날. 

바람이 몹시 차갑던 12월의 끝자락의 금요일 밤.

나는 내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


이렇게 또 너무 지루하게 저무는 내 한 해가 아쉬워,
손톱이라도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고...


늦저녁 만난 친구에게 손톱을 보여주며 이쁘지 않냐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톱 위로 당신을 잃은 내 눈물이 떨어졌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빨간 손톱은 조금 자라 있고,
손톱을 내려다볼 때마다, 나는 당신 생각이 저릿 난다.

여전히 붉게 빛나는 손톱을 가만가만 매만져 본다.

당신을 잃은 그날 밤의 내 상처인 것 같아 아프다.






#3.

사는 동안, 내 기억이 자리한 4번의 당신과의 만남을 돌이켜봤다.

무덤덤했고, 지루했다.
나는 그 만남들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랬었다.


다만. 하나.
당신이 나를 보러 왔었던 처음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다.


열두 살 즈음이었다.
서울 사는 친척을 통해 나를 보러 왔었다.


숫기 없어 눈 한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를,
당신은 무척 애틋하게 바라봤었다.
그 눈길이 못내 마음에 남아서, 사는 동안 당신을 잊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당신은 처음으로... 아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선물 상자를 건넸다.

워크맨이었다.


그 앞에서 끝내 고맙단 인사를 전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한동안, 아니 몇 해를 내가 그 워크맨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아꼈는지... 당신은 몰랐을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는데,
있었다.


어린 나는, 그때 당신이 너무 좋았다.

나와 닮은 얼굴을 한,
웃는 눈매가 닮은 당신을 마주한 그때 나는,
어쩌면...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살가웠다면,
어렵게, 어린 딸에게 내민 당신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았다면,
우리는 사는 동안.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었을까?


당신이 내민 선물 상자를 받으며, 너무 좋다고.. 마음 그대로 말했다면,
우린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4. 

당신은 늘 뻔뻔하고 당당했다.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죽어서도 용서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어딘가에 글을 쓴다며 주소를 적어 주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들어가니, 당신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가득 적어 놓기도 했었다.

그 글들을 왜 내게 보라 했는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라는 거지...?

네가 아니어도, 나는 누군가의 아빠이고,
이렇게 무한한 사랑을 준단다... 를 말하고 싶었던 건가?'


밉지도 않았다.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을 미워하는 데 있어서, 그 뻔뻔함은 도움이 되었다.
아무 주저 없이 당신을 미워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는 좀 더 어른이 되었고,
당신보다는 좀 나은 삶을 살고 있게 되니,
그리고, 당신을 잃고 보니...


그게 당신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눈 한번 마주하지 않고, 이름 한번 불러보지 못할 만큼 곁을 주지 않는 딸에게 손을 내미는 당신만의 방법.


뻔뻔하고 당당했던 당신은, 그래서 죽지도 않고 어딘가에서 후회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곁을 주지 않는 당신이 너무 미웠는데,


죽는 그 순간 까지도, 당신 몸속에 암덩어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당신은 몰랐다 한다. 어쩌면..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었을 것이고, 후회 가득한 당신 인생을 되돌아볼 시간도 없지 않았을까...라고 가늠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뻔뻔하고 당당한 당신이라면,
죽는 순간 까지도, 내게 미안하지 않다.라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당신은 사는 동안, 내게 너무 미안했을 것이고, 내가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당신도 나도,
참 어리석었다.




#5.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라는 한마디를 나는 못했다.


친한 친구들 에게, 의지하는 사람들 에게, 나는 당신의 부음을 알리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토해 내듯... 적어나가는 글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나는 아무렇지 않지 않다. 


무던한 듯 지내다가도 문득...

'아... 맞다.. 당신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

울컥 차오른다.
욱신욱신,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

그리고 운다.


일상적인 일, 그리고 대화 속에,
아무렇지 않은 내가,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

아니,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내가, 미치도록... 괴롭다.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뻔뻔하고 당당하게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싶다.
당신의 부음을 들었던 그날 밤의 기억을 누군가 지워줬으면 좋겠다.

나는,
올해 서른아홉이 되었고,
당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이제.. 서른아홉의 해를 이제 막 시작 했고,
서른여덟 해에 당신을 잃었다.

삼십팔년 우리는 서로 다른 생을 살았다.


지독히 외뤄웠던 당신.
평생 후회 속에 살았을 당신.
그리고... 뻔뻔하고 당당했지만, 내게만은 그러지 못했던 당신.

이제 편히 쉬기를.... 


그리고, 계속 살아가는 나는, 당신을 잘 보내줄 수 있기를...





이 이야기를, 이제는 그만 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 이 공간 밖에는, 나는...  이야기할 곳이 없다.


이제 그만. 보내주고 잊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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