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제 소개에도,
그리고 지난 글에도 언급되었듯이,
저는 십이 년째 공연기획자이자 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 이겠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네...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요?
저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수십 편의 공연을 올리고 내리고, 준비하고 마치고.
관객들에게, 공연이 가진 좋은 점 그리고 우리가 가진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고민합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이, 모든 일의 기본적인 목적 이니까요.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듯.
잘 되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공연 또한 부지기수.
작품을 탄생시킨 창작자나, 자본을 책임지는 제작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순간, 기획자의 책임감은 무거워집니다.
나로 인해, 이 귀한 작품이 외면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우울감과 좌절감은 끝도 없어요.
공연은, 결과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한 장의 정산서에, '유료 관객 점유율 몇 프로' 라는 한 마디로 갈음되곤 합니다. 몇 년을 몇 달을 준비하고 마음 쏟은 공연이 그렇게 끝나버리고 나면, 허탈합니다. 꽉 움켜쥐었던, 무척 아끼던 사탕을 다 먹고, 남은 막대만 보는 기분 이랄까요...
처음, 공연을 선택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가 좋았고, 이야기의 테두리 안에서, 제 직업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 마침 보았던, 대학로 소극장의 '지하철 1호선'과 조승우 배우의 '지킬 앤 하이드'! 이 두 편의 뮤지컬이, 제가 업으로 삼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공연에 처음 몸 담았던 그때만 해도, 인맥이나 연줄이 아니면 공연 일에 발을 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때는 이 직업군이 무척 폐쇄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시작' 하고 싶어,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그렇게... 발을 들이고, 두 발과 두 손 모두 담근 채, 십이 년을 이 '이야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떠나고 싶었던 적,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돈도 벌고 싶었고요. 다른 친구들처럼 노는 날 놀고, 저녁엔 칼퇴라는 걸 해서 '여가 생활'도 즐기고 싶었고요. 매 년, 공연 라인업으로 한 해가 결정되는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도 싶었어요.
(공연은 누군가의 퇴근 시간에 시작하고, 누군가의 휴일에 두번이나 합니다...)
이럴 때, 어른들이 말씀하시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젠 습관처럼, 하나의 매뉴얼처럼 살아지고 있는 이 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개미지옥)
제 삶에, 무한한 시련과 그늘, 그리고 지난한 일상을 주기도 하지만,
늘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살아있는 이 이야기가, 저는 너무 좋습니다.
한 해, 한 해가 쌓여 갈수록.
그 마음은 커져가요. 그리고 커지는 마음만큼이나,
더 현명한 기획자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성공적인 마케터가 되고 싶다.라는 욕심도 커집니다.
욕심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현재가 늘 고달프긴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여전히 허허실실 즐거운 공연人입니다. 관객들의 박수가 무대 그리고 배우에게 향하는 순간. 모든 피로와 고민을 잊어낼 수 있어요. 참 놀랍죠. 십이 년을 했는데도 여전히 감성적인 이 직업적 멘탈 이라니... 어쩌면, 저는, 과도한 환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어요.
콘서트, 라이선스 뮤지컬, 대극장, 소극장.. 숱한 무대 속에,
제가 제일 탐닉하는 작업은, 중소형 창작 뮤지컬 작업입니다.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물론 창작진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이야기가 빛날 수 있도록 다듬어 관객들에게 선 보이고,
우리가 가진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몇 달을 연습해서 무대에 서는 그 날. 첫 공연이 무사히 올라가, 박수를 받는 커튼콜 까지. 그 일련의 작업 과정을, 저는 너무 애정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현재, '창작 뮤지컬 공모' 프로젝트에 몸 담고 있습니다.
물론. 제작사에서 기획, 홍보, 마케팅을 했던 수많은 작품들 모두 의미 있었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창작진의 귀한 첫 작품을,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과.
그들에게서 배우는 공연에 대한 열정이,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아마도 더 즐거운 공연 쟁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진 능력이 어디까지 일지 모르겠지만,
부족하나마, 그들의 첫걸음을 꽃 길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직업으로서의 공연人은, 여전히 가시밭길을 걷고 있으며,
개인적인 이 삶은 어느 하나 나아진 것 없이, 늘 소화불량과 두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에, 행복합니다.
비록 이것이, 현실 탈피 동반 과도한 환상일지라도.... 혹은 자기만족에 그칠지언정.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공연 기획자로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간간히, 아니 자주, 공연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현장 밀착 공연기, 생생하게 들려 드릴 수 있도록... 공연 이야기 보따리를 재미지게 풀어보겠습니다.
(천성이 지지리 궁상 우울인지라, 마냥 즐거울 수 없겠지만, 노력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