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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Jul 18. 2017

#9. 서른일곱 미혼, 양심 없는 딸.  

[일상 이야기: 小小하지 아니한 즐거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대요?!

스무 살 이후엔 먹고 살 준비하는 졸업장에 모든 걸 걸었고,

졸업 후엔 먹고사는 데, 내 모든 걸 걸고 나니. 서른일곱이 되어 있네요.


서른일곱 까지, 혼자 일 줄 몰랐어요.


서두부터 자폭 입니다만.

어렸을 때 분명, 이 나이쯤 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정도는 키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복만 넘쳐나는, 결혼 못한, 시간적이고 금전적인 쪼들림에 지칠 대로 지친 서른일곱의 제가, 존재합니다.



[사진출처: pexels]


독신주의도, 삼포세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연애와 결혼에 목을 매지도 않습니다.


한해 한해 다른 내 일에 대한 치열함. 그리고 아직은 혼자가 좋은...

더 쉽게 말해서, 좀 더 놀고 싶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 사는 데 이렇게 애쓰는데, 굳이 연애나 결혼 까지.. 기를 써야 하나... 


결혼한 친구들은 자꾸... "혼자 사는 너의 자유가 부럽다, 혼자 살아도 된다."라고 꼬시고. 

뭔가 더 놀고 싶은 마음도 더 커지고. 워킹맘의 슈퍼 파워, 도저히 따라갈 자신도 없어지고. 


네. 지금까지 거창한, 서른일곱 솔로의 이유이자 변명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스스로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의지도 없어요. 될 대로 되라지...  


그. 러. 나. 


인생 혼자 사는 거 아니고, 내 인생이 오롯이 내 것만은 아닌,

우리 엄마 딸 로서의, 서른일곱 미혼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사진출처: pexels]

 

엄마랑 저는 딱 서른 살 차이가 납니다.

엄마 때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결혼이었고... 본인의 불행한 결혼 생활 탓에,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강요하진 않았어요. 능력만 있다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본인 나이에 비해 엄청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셨던 분인데...


몇 해전 큰 수술을 받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 여성분은, '이제 제발 좀 결혼 해 달라' 고 부탁을 합니다. 하라는 말도 권유도 아닌, 부탁을...


그럴 때마다 듣는 척도 안 하면, 낮게 읊조립니다.


"양심도 없다.." 


네, 결혼 안 하는 게, 양심 없는 나이가 되었어요.


티브이에서 아이들만 나오면, 그렇게, 제 옆구리를 찌르고... 어떻게든 키워준다고 회유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여섯 살 강아지한테 뭐라 뭐라 말을 하길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한테 왜 그래..' 했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나도 사람 새끼랑 얘기하고 싶다."라고... 반박 못할 강력 화법도 쓰시고.


그래도. 끄떡없지요.

엄마는 한 번도 저를 이긴 적이 없거든요. 아니, 이기려 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이러다 마시겠지 했는데,

 

작년 가을, 이 튼튼한 손목이 똑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00% 본인 과실 인지라,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아마, 철들고 그렇게 크게 다친 적은 처음이었을 거예요...


손목에 철심을 넣어 부러진 손목뼈를 이어 붙이는 수술을 받았어요.

진통제 맞아가며 아픔 참는 딸이 안쓰러웠던지... 늦가을 찬 바람 들어갈까 이불 끌어 덮어주며, 그러시대요.


"너도 나도 이제 늙어가고, 아플 일만 남았잖아. 나는 네가 버거워..." 


서른여섯 딸내미 간호에 지친 엄마의 말에 가슴이 죄어 왔습니다.

그 말 앞에서는 뻔뻔해지지 못했습니다. 효도는 못할 망정... 편하게 라도 해야 하는데...


서른일곱의 아픈 미혼의 딸은, 예순이 훌쩍 넘은 노모를 버겁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플 때 보다,

딸이 아플 때,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더 크게 오는 것. 그게 엄마 인가 봅니다.


언제까지 엄마는 내 엄마여야 하는지,

둘 뿐 이였지만, 엄마랑 나는 참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서로가 버거운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한테 나 아닌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네요. 언제까지, 나 좋은데로 망아지처럼 자유롭게만 살 순 없잖아요.


'그래. 결혼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어. 이기적인 이 생활 좀 접고, 결혼을...'

이라고 결심.

... 하면 뭐해요...


결혼은 혼자 하나요...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사는 서른일곱 딸내미는, 오늘도 '반성'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한테 받은 사랑 그대로,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나 아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삼십칠 년을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고 만들어 낸 딸내미의 인생이, 

오롯이 '평안한 가정'에 안착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게, 엄마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서른일곱의 미혼, 스스로에게는 부족함이 없지만.

'양심 없는 딸'이 될 수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내가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해,

오늘도 아주 조금씩, 커가고 있습니다.






덧글. 작년 저 얘길 들었을 때, 분명 1년 안에는 결혼하겠다고 선언 해 놓고.

다니던 회사 잘 다니며 착실히 '결혼'을 향해 나아가지는 못할 망정.


만물이 성장하는 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에 대한 욕심과 의욕이 하늘만큼 커지는 '새로운 일'을 시작 해 버리고 말았으니..


사수에게, '회사가 정상화되기 전까지, 결혼 안 하겠습니다'라고 선언 해 버리고 말았으니..


오늘도, 결국, 좀 더 이기적인 딸내미입니다.


이 글을 볼 리 없는 엄마에게는, 너무 미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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