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감수성은 멍청하지 않다

by 강연이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노동입니다. 하지만 피상적인 감수성은 고통의 이미지만을 취해 자신의 순수함을 꾸미는 장식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성실하게 공감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는 타인의 아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삶은 때로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견디며 한 걸음 내딛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삶을 그저 느낌이나 무드로만 소비하며 삶의 고통을 요약해버리는 태도는 삶에 대한 예의가 없는 행위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처럼 보이기 떄문에 극도의 거부감이 드는 것입니다.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감정은 곧 책임입니다. 진짜 순수는 모든 추악함과 고통을 다 알고도 지켜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천진난만한 것은 그저 운이 좋거나 비겁한 것일 뿐인데 세상이 그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켜세울 때 삶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성숙해온 사람의 시간은 졸지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격하됩니다.


여기서 자기 존재에 대한 방어를 하고자 화가 나게 됩니다.

'나도 가벼워지는 법을 모르지 않는다. 나도 입 닫고 눈 감으면 저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칭찬받으며 살 수 있는데 나는 양심이 있으니 그 길을 포기했다' 자신이 선택한 성숙의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순수함이라는 과실을 먹어치우는 상대가 마치 무임승차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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