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돌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다.
처음 사회복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전문성’이라는 단어를 무척 무겁게 느꼈다.
잘 모르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더 많이 외우고,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돌봄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은 내가 배운 이론보다
내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셨다.
“오늘은 왜 인상이 흐리냐?”
“선생 오늘 마음이 안 좋아 보여.”
그 말에 나는 놀랐고, 부끄러웠다.
나는 돌봄을 배우러 왔지만,
어르신은 나를 사람으로 보고 계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전문성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진심으로 이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한 어르신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너는 뭘 몰라도 괜찮아. 그 대신 날 사람대접만 해줘.”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그 후로 내 기준이 달라졌다.
‘잘하고 있는가?’를 묻기보다‘진심인가?’를 묻는다.
그게 나의 기준이고, 나의 전문성이다.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 관계를 지키는 건 논문도, 자격증도 아닌
내 안에 있는 사람다움이다.
나는 지금도 부족하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는‘잘하려는 전문가’가 아니라,
‘곁에 머무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
완벽한 돌봄보다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정확한 판단보다
조용한 공감이 더 필요하다는 걸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알게 되었다.
전문가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곁에 머무는 사람은
그 문제 속에서 함께 숨을 쉰다.
어르신의 불편함을
내가 다 고칠 수는 없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함께 웃을 수는 있다.
곁에 머문다는 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일이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기다려주고,
그분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돌봄을 기술로 배우기보다
마음으로 익혀가고 있다.
그 마음이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부드러워질수록
그분의 존엄은 더 단단히 지켜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으려는 사람’으로
그 곁에 머무른다.
그 마음이 모여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따뜻하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작은 물결 하나로 남기를 바란다.
잘하려는 욕심보다
곁에 있으려는 다짐으로.
그분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도록.
나는 이제
돌봄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돌봄 속에‘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분의 삶에
작은 온기를 더하는 존재.
그분의 존엄을
조용히 지켜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