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나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고백.
어느 날,
한 어르신이 내게 갑자기 화를 내셨다.
사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은
“너도 똑같아! 다 똑같아!”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날 끝까지 웃는 얼굴로 일했지만,
퇴근 후 화장실에서 조용히 울었다.
돌봄은 감정노동이다. 그리고 그 감정노동은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때로는 큰 ‘상처’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나만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그런 질문에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돌보는 사람도 결국‘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 인정하려 한다.
지치고 흔들리는 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은 누군가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일이기에
때로는 그 고통이 나에게도 옮겨온다.
그렇기에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하다.
잠시 멈춰도 된다.
혼자 울어도 된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된다.
그래야 다시 어르신 곁에서 웃을 수 있다.
나는‘상처받은 돌봄자’라는 말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고,
사람을 향한 마음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그 마음은
작은 불편을 감수할 줄 아는 용기이고,
누군가의 침묵을
함께 견디려는 인내다.
그 마음이 살아 있다는 건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한 사람의 느린 걸음에
발을 맞추려는 선택이다.
무뎌지지 않으려는 노력,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을 접어두지 않으려는 다짐.
그 작은 흔들림 하나에도
멈춰 서서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나는 아직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다.
돌봄은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 안의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내 안의 인간다움이
조금씩 더 단단해지도록.
어르신의 손을 잡을 때,
그분의 눈빛을 마주할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분의 삶에 닿는 순간,
내 삶도 조금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한 마음이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무심하지 않은 것.
누군가의 기쁨 앞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내 안에 여전히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곁에 머무르기로 한다.
잘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으려는 사람으로.
그 마음이
내가 인간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니까.
그 마음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마음을 지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