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얻는 다정함
도시에 살 때는 늘 빠른 걸음이 당연했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길을 건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올라타야만 했다. 사람과 부딪히는 순간조차 하나의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마을로 발길을 옮긴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은 곧 풍경이 되었고, 자연은 또 다른 이웃이 되었다. 관계 속에서 얻는 다정함이란 것이 이렇게나 깊고 단단한 것임을,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아침에 마당을 쓸고 있으면 옆집 할머니가 다가와 막 수확한 고구마 몇 알을 내민다. “많이 캤는데 혼자 다 못 먹어. 나눠 먹어.”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묘하게 따뜻해진다. 도시에서는 택배 상자 너머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의 손에 직접 무언가를 건넨다. 마치 품앗이의 전통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듯하다. 나는 며칠 전 직접 담근 장아찌를 작은 통에 담아 건네고, 또 다른 날에는 함께 김장을 나누며 웃음을 나눈다.
그 순간 깨닫는다. ‘나눔’은 단순히 음식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일상을 조금 덜 무겁게 하고, 외로움을 조금 덜 고독하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보아온 가장 큰 힘도 결국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도움을 주고받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 없는 위로. 그 속에서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 역시 또 다른 이웃이 되어 다가온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인사를 건네고, 개울물은 끝없이 흐르며 내 마음의 무거움을 씻어낸다. 나무 앞에 서면 그 연륜의 깊이가 전해져 온다. ‘급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너를 만들어갈 것이다.’ 마치 나무가 건네는 무언의 조언처럼.
언젠가 강가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붉게 물든 하늘과 고요히 흐르는 물결은 내 안의 수많은 질문에 답을 대신해 주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성과와 목표를 요구했지만, 자연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알려준다. 자연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다정함과 비슷한 감각을 얻는다. 그것은 무심한 듯 그러나 늘 곁에 있는, 한결같은 동행이다.
느린 삶은 결코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일 때 더 깊어진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잔치, 숲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웃과의 짧은 인사, 농사일을 도우며 나누는 땀방울 속 웃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일상의 결을 부드럽게 만든다.
‘혼자’만의 성취와 속도가 중심이었던 도시의 삶과 달리, 이곳에서는 함께 느리게 걸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서로의 걸음을 맞추어주고, 자연의 속도에 나를 내어 맡기며, 그 안에서 진짜 풍요를 발견한다. 느림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그리고 그 충만함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의지하고 다정하게 마주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
이 장을 마치며 나는 다시금 되새긴다. 다정함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작은 인사와 나눔 속에, 바람과 나무의 속삭임 속에, 함께 걸어가는 느린 발걸음 속에 이미 존재한다. 느린 삶과 로컬라이프는 결국 우리를 관계의 중심으로 이끌고,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은 다시금 자신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