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오감을 깨우는 작은 발견들

온전한 휴식의 가치.

by YEON WOO

도시에서 살던 나는 늘 눈앞의 풍경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출근길의 하늘은 그저 회색 배경일뿐이었고,

저녁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은 건물 사이로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장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하루는 내 오감을 다시 깨워냈다.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 조금만 눈길을 주면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아침 새벽,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은 작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투명한 구슬들이 무지갯빛으로 흔들린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장식품도 이보다 더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저물 무렵에는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도시에서는 그저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던 노을이,

여기서는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선물처럼 다가온다.

그 순간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소리 또한 다르다. 밤이 깊어갈수록 풀벌레들이 합창을 시작한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풀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어울려 작은 교향곡을 만들어 낸다.

도시의 차 소음, 기계음에 익숙했던 귀가 이제는 자연의 합주를 따라가며 안도감을 찾는다.

그 속에 있으면, 내가 거대한 자연의 품에 둘러싸여 있다는 안정감이 밀려온다.


후각 또한 새롭게 깨어난다.

이른 아침 마을 어귀에서 풍겨오는 갓 구운 빵 냄새는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된다.

텃밭에서 방금 딴 오이와 토마토를 손에 쥐고 코끝에 가져가면,

신선한 흙냄새와 함께 푸릇푸릇한 향이 느껴진다.

그것은 마트에서 포장된 채소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향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아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싱그러움이 내 몸을 깨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골에서 배운 것은 ‘멍 때리기’의 행복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마당 평상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

여름 저녁,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참외를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가득 번진다.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히 깔린 풍경 속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달콤함을 오래 음미한다.

그것은 단순한 과일의 맛이 아니라,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맛’이었다.


겨울 아침에는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린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뒤 꺼내든 뜨끈한 고구마,

손바닥 위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를 때 나는 두 손을 비비며 서둘러 껍질을 벗긴다.

노랗게 드러난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맛이 혀끝을 간질인다.

그 따스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온몸이 서서히 데워지며 하루가 시작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남의 시선도, 사회의 기준도 필요 없다.

단지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온전한 휴식의 가치다.

몸과 마음이 조용히 다시 맞춰지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골의 삶은 내 오감을 하나하나 되살려 주었다.

눈으로는 빛을, 귀로는 소리를, 코로는 향을, 입으로는 맛을, 그리고 피부로는 바람의 온도를 다시 느낀다.

그렇게 작은 발견들이 쌓여 나의 하루는 더 풍요롭고 충만해진다.

나는 깨닫는다.

행복이란 거창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작은 순간들을 오롯이 감각하는 데 있다는 것을.



keyword
이전 10화3.1.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