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내 안의 시계를 찾아서

by YEON WOO

시골의 하루는 도시의 시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늘 촘촘한 계획표와 알람 소리에 갇혀 있다.

하지만 시골에 오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 눈을 뜨고, 닭 울음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해가 지면 어둠이 찾아와 자연스레 몸도 쉼을 찾는다.

이 단순한 리듬 속에서 나는 ‘붙잡으려는 시간’이 아니라 ‘흐르게 두는 시간’을 배우게 되었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그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알려준다.

봄날, 고운 흙을 일구어 작은 토마토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마음은 들뜬다.

초록 잎사귀 몇 장에 불과한 작은 생명체가 여름에는 주렁주렁 빨간 열매를 맺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단숨에 오지 않는다. 햇볕이 모자라면 줄기가 약해지고, 비가 과하면 잎이 상한다.

매일 아침 물을 주며, 벌레가 달라붙지 않았는지 살펴보면서도 나는 안다.

이 모든 정성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속도는 내가 아니라 토마토의 시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감자를 심을 때도 마찬가지다. 초봄 땅속에 씨감자를 묻을 때는 아무런 변화를 볼 수 없다.

겉으로는 흙이 고요하기만 하지만, 그 안에서는 작은 싹이 어둠을 뚫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땅 위로 초록 줄기가 솟아오르는 순간, 나는 비로소 긴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감자를 캘 때의 묘한 설렘을..

흙을 헤집으면 알알이 숨어 있는 작은 감자들이 손바닥에 차갑게 와닿는 그 순간은 기다림의 결실이 얼마나 달콤한지 말해준다.


벼농사 또한 ‘시간의 순리’를 일깨운다.

모내기를 마치고 푸른 모가 일렁일 때는 가을의 황금빛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마와 태풍을 견뎌내고 계절이 돌고 돌아 결국 논바닥은 황금빛 물결로 가득 찬다.

벼가 여물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성급함’이란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다시금 배우게 된다.

억지로 빨리 자라게 만들 수 없듯, 삶의 많은 일들도 때를 기다려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내 안의 시계가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에는 시간을 쪼개 관리하며, ‘내 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성취감보다 피로감이었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다르다. 시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임을 알려주었다.

텃밭의 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고 살아낸다.


이제는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억지로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물결 속에 발을 담그고, 차가움과 따뜻함을 온전히 느끼려 한다.

내 안에서 또 다른 시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외부의 시곗바늘이 아닌,

계절의 호흡과 내 마음의 리듬에 맞추어 똑딱거리는 ‘내 안의 시계’다.

그 시계는 조용히 말한다.

“서두르지 말고, 흘러가는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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