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부제: 이름이 있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에 있다는 것.

by YEON WOO

그날도 평소처럼

어르신들의 방을 하나하나 돌며 안부를 살피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낯익은 표정, 하지만 매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는 늘 “선생님”, 혹은 “거기 그 사람”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상처였다.

열심히 해도, 정을 쏟아도,

내 존재는‘기억의 바깥’에 있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르신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신연우 선생... 맞죠?”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르신의 또렷한 눈동자 속에서

내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구도 아닌, 내 이름으로 불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존재의 인정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말과 행동,

그 따뜻한 인사, 부드러운 손길,

어쩌면 하나도 잊히지 않았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은 말은 잊더라도, 마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하루 속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돌봄은 나를 키우고

돌봄은 나를 사람답게 만들고

돌봄은 내 이름에 온기를 더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이다.

돌봄은 하루의 시작을 다르게 만든다.

누군가의 안부를 먼저 떠올리고,

그 사람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내 마음도 조율된다.

그 작은 배려 속에서

나는 타인을 중심에 두는 법을 배운다.

돌봄은 나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깊게 만드는 일이다.

어르신의 느린 걸음에 맞춰 걷는 순간,

나는 인내를 배우고,

그분의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존중과 경청의 가치를 깨닫는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눈물이 맺히지만,

그 모든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누군가의 삶에 닿아 있다는 증명이다.

돌봄은 내 이름을 바꾼다.

그저‘누구’가 아니라

‘기억해 주는 사람’,

‘곁에 있어주는 사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내 존재가 새롭게 불린다.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고맙다”는 짧은 말,

손끝에 닿는 미소,

눈빛 속에 담긴 신뢰가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더 따뜻하게 만든다.


돌봄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조용한 사랑을 심는 것이다.

그 사랑은 말보다 깊고,

시간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오늘도

그 사랑을 배우며,

돌봄의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더 사람다운 내가 되어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우고,

누군가의 불완전함을 껴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된다.

돌봄은 나를 부드럽게 만든다.

예민했던 감정은 이해로 바뀌고,

무심했던 시선은 애틋함으로 물든다.

그분의 하루에 귀 기울이며

나는 내 하루도 더 깊이 살아가게 된다.

사람다운 삶이란

누군가를 위해 멈춰 설 줄 아는 삶이고,

그 멈춤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그 길은 때로 고요하고,

때로는 눈물겹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내 안의 온기를 키워준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단순히‘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분의 이름, 그분의 기억,

그분의 삶의 결을 존중하며

그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조금씩, 더 사람다운 내가 되어간다.

돌봄은 나를 바꾸고,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그 길은 느리지만,

가장 진실한 길이고,

가장 따뜻한 길이다.

눈에 띄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길.

화려하지 않아도,

삶의 본질을 꿰뚫는 길.

그 길을 걷는다는 건

누군가의 고요한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작은 변화에도 마음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간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깊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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