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관계를 지켜가는 사람의 마음
“그게 누구야?”
그날도 어르신은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 물으셨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예요. 매일 아침 인사드리러 오는 사람 있잖아요.”
어르신은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 잘 모르겠어. 근데 익숙하긴 하네.”
익숙함.
이 말이 참 고맙게 들렸다.
비록 이름도, 관계도 잊혔지만
그분의 마음 어딘가에
내가 머무른 흔적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사라진 관계를 왜 붙잡고 있을까?’
‘상대가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이 마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나는 그분을 기억하니까.”
돌봄이란
상대가 나를 알아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기억해 주는 것.
그 기억이 이어질 때,
우리는 한 사람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다.
치매는 모든 걸 잊게 만들지만
나는 그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
젊은 날의 아픈 경험,
그리고 한 번쯤 들려준 노랫가락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분이 스스로 잊어가는 삶을
대신 간직해 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존중이자
끝까지 지켜야 할 관계의 끈이다.
어르신이 나를 몰라도,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가 웃고,
같은 온도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오늘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당신은 잊었을지 몰라도,
저는 당신을 절대 잊지 않아요.”
그렇게
잊히는 관계가 아니라, 이어가는 관계로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 곁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