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기억은 흐려져도 존재는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지…”
한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치매라는 질병은 기억을 조금씩 앗아가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무너지는 것은
존재로서의 자존감이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선생님이었고
어떤 때는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던 사람이었던
그 모든 ‘사람다움’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듯 보일 때,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는 항상 말하고 싶다.
“어르신, 지금도 충분히 소중하고 귀한 분이에요.”
하지만 그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분의 존재를 존중하는 행동이다.
언제나 눈을 맞추고,
손을 잡을 때는 살며시 온기를 전하고,
조금 느리게 대답하시더라도
기다리고, 웃고, 함께 호흡하는 일.
어떤 어르신은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여긴 어디야?”
“나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고 반복 같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 질문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는 그 두려움에 매번
‘괜찮아요. 여기 함께 있어요’라는
안심의 대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질문이 반복될수록,
더 조심스럽고, 더 따뜻하게 대답한다.
그분이 그분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치매는 삶을 흐릿하게 만들 수 있지만,
존엄은 절대 흐려지지 않는다.
그 사람다움을 지키는 일,
그게 바로
진짜 돌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