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삶의 마지막 계절도 찬란할 수 있다
가을의 나무는 잎이 지기 전에
가장 아름답게 물든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의 말이 떠올랐다.
“난 이제 다 늙었지.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이야.”
그 말이 너무 슬프게 들려
나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
“어르신, 나이 드는 건 마르거나 썩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예요.”
우리는 종종 늙음을‘끝’이나‘쇠퇴’로만 여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겹겹이 쌓인 시간, 수많은 인내,
참아낸 감정과 견뎌낸 고통,
그리고 깊은 사랑이 있다.
나는 치매 어르신과의 시간을 통해 배운다.
말이 줄어든다고 지혜가 사라지는 건 아니고,
걸음이 느려진다고 존재의 깊이가 얕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
어르신들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많은 것을 익혀온 분들이다.
그 삶의 열매는 가을의 단풍처럼
때로는 붉고, 때로는 누렇고, 때로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돌봄이란
그 익은 삶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정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어르신의 계절을 바라본다.
가장 찬란한 붉은빛이 지기 전,
그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오늘의 마지막 숨결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뜨겁게 타오르던 마음도,
서서히 식어가는 감정도,
모두 이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 온기는
누군가의 눈빛 속에,
작은 손길 속에,
그리고 말없이 건네는 존재의 무게 속에 담겨 있다.
지기 직전의 붉은빛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돌봄의 가장 깊은 순간이다.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그 따뜻함을
마음 깊이 새긴다.
그리고 그 온기를 품은 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돌봄은 그렇게,
하루의 끝에서 시작되고,
작은 온기에서 이어진다.
돌봄은
빛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온기로 서로를 감싸는 일.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