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친한 작가님이 한분 계신데요. 동화 작가로 이미 등단하셨는데 이번에 동시작가로도 등단을 하셨습니다. 동시를 혼자 쓰기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이뤄낸 빛나는 성과이지요.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응모한 동시 1250편 중에서 1등을 한, <소금이 온다>입니다. 한번 음미해 보세요. 생각이 많아지실 겁니다.^^
소금이 온다. - 신혜영
할아버지 병원에 있으니
소금밭이 고요하다
끌어올린 바닷물이 없으니
말릴 바닷물이 없다
할아버지가 밀던 대파*는
창고 앞에 기대어
할아버지 땀내를 풍기는데
물 삼키던 햇볕은
애먼 땅만 쩍쩍 가른다
새싹 같고 볍씨 같고
눈꽃 같던 소금꽃들
할아버지 땀이 등판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얀 살 찌우던 소금꽃들
푸른 바다는 멀리서
꽃 피울 준비하며 애태우고 있을까
할아버지 소금이 없으니
세상엔 소금이 좀 부족해졌을까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곤
주문을 넣는다
할아버지가 온다
소금이 온다
*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신춘문예는 매해 신문사에서 신인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실시하는데요, 경쟁률이 만만치 않습니다. 모든 문학 공모전의 경쟁률은 다 높은 편이지요.
신춘문예는 시, 단편소설, 희곡, 동화, 동시, 시조, 평론으로 나뉩니다.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대학에 재학 중인 95년생부터 57년생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더군요.
57년생 당선자는 소감문에서 자신의 단편소설 당선 소식에 '그물망처럼 촘촘한 주름살을 지닌 엄마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라고 했습니다. 64세 신춘문예 당선자의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상상이 됩니다.
95년생, 이제 막 군 제대를 한 희곡 당선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 후까지 각종 대회에 응모했으나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긴 기다림 끝에 신춘문예 당선이 된 것이지요.
동시로 당선되신 저의 글벗, 신혜영 작가님 역시 50대 중반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대학 졸업반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동화를 쓰시다가 동시까지 쓰시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남은 인생 내내 동화와 동시의 세계에서 자신을 소금꽃 피우듯 활짝 피우실 일만 남았습니다.
제가 구구절절 이렇게 나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요, 취업이나 특별한 일을 하는 데에는 연령 제한이라는 것이 있지만 문학에 있어서 만큼은,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예외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에는 '나이'가 결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대의 청년도 5,60대의 중장년 층도, 7,80대의 노년층도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가닿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고 소금이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살아보고 싶습니다. 햇볕에 바닷물이 말라붙어 소금으로 꽃 피울 때까지의 긴긴 시간들을 또박또박 견뎌 나가고 싶습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질 중 하나이며 인류가 이용해 온 조미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소금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합니다. 우리들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다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소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소금 같은 우리가 우리들 각자만의 소중한 '소금'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2020년 한 해의 시작을 희망차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