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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r 29. 2020

시상식 그 갈치, 한토막을 기다리다

소금이 온다. 갈치가 온다

나와 친한 선생님이 지난해 말 신춘문예에 <소금이 온다> 동시로 등단을 했다.


동화로도 등단을 했는데 혼자 묵묵히 동시를 쓰는 시간들을 보내더니 '2020 신춘문예'에도 당선을 한 거다. 반가운 마음에 친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식사하며 축하 인사도 전했다.


그 후 1월 22일. 예정되어 있던 시상식에 초대를 받았다.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당일 일찍 퇴근해서 늦은 밤 딸아이를 픽업해 주기로 한 남편의 스케줄에 문제가 생겨 버렸다.


남편 회사의 인사발령으로 인해 직원들 송별회를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약속했던 시상식에 못 가게 되었다. 딸아이 픽업을 내가 대신 해야 했으니까.


죄송스러운 마음에 시상식 시간에 맞춰 선생님께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케이크를 보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선생님은 나에게 못 오는 거냐고 물으셨다.


섭섭하셨을 거다. 나 역시 죄송했다. 어지간한 약속은 지키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축하해야 할 자리에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나니 마음이 참 편치 않았다.


뒷날. 선생님이 보낸 시상식 사진이 카톡창에 떴다. 내가 계속 마음쓰며 불편해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안심하라고 보내 주신 문자였다. 사진 속 많은 꽃다발을 보면서 동반 참석하여 축하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곧이어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그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엄청나게 웃었다.



"내가 어제 리하님 주려고 갈치 한 토막을 들고 갔거든요."


"네? 가..갈치요???"


"우리 애 아빠가 낚시를 좋아하잖아요. 낚시하면서 갈치를 여러 마리 낚았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저 주시려고 싸오셨다고요??? 시상식에?"


"그랬죠. 우리 집 식구들은 시원찮은 것들로 먹고 리하님 준다고 가장 굵고 통통한 가운데 토막 들고 갔잖아요. 호호호. "


"아, 진짜. 시상식장에서 상 받을 사람이 향수 뿌려도 뭣한데 갈치 들고 오시면 어쩐대요?"


"그 갈치가 너무 맛있어서 먹어 보라고 가져 간 거지. 우리가 자주 만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블루보틀 커피 원두를 선물 받았는데 우리 식구들은 안 먹어서 그것도 들고 갔었어요. 리하님 블로그 보니까 블루보틀에 한번 갔더구만요. 리하님 집에서 갈아먹으라고."


"근데 제가 시상식에 안 갔으니 이 일을 어쩐대요? 너무 죄송해요. 그나저나 갈치는 어떻게 됐어요?"


"시상식 끝나고 음식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니 가방 속에서 반쯤 녹아 있더라고요. 지가 별 수 있나? 다시 냉동실로 돌아가야지. 다음에 만날 때 또 들고나갈게요."



선생님과 전화를 끊고 나서도 선생님의 행동을 떠올리면 웃음이 났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눈물이 찔끔 났다.


신춘문예 당선자가 곱게 차려 입고 시상식장 가는 도중 가방 속에 얼린 갈치 한 토막 넣고 갈 생각을 하다니. 남편분이 잡은 갈치 중 가장 통통하게 살찐 부분을 주고 싶으셨던, 타인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그 마음이 순간 내 가슴속에 훅 들어와 버렸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어느 때부터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집에 있는 물건을 들고 나가 전해 주고 있었다. '내가 먹어 봤는데 이거 맛있었어.' 하면서 사과 몇 알, 한라봉 몇 알, 맛있는 과자 몇 봉지를 준다. '내가 써봤는데 이거 완전 좋아.' 하면서 볼펜, 스티커, 노트, 아이크림, 비누 같은 것들도 나눠 준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뭐, 이런 시시한 걸 선물이랍시고 주냐???' 생각될 수도 있다. 안다. 하지만 집에서 먹고 쓰고 바르는 순간순간 이 좋은 걸 함께 쓰고 싶다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이 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거다. 대단하고 화려한 선물은 아닐지라도 그 작고 소소한 것들에 '그 사람'을 생각하는 온전한 나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나만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갈치 한 토막을 시상식장까지 들고 가셨다는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셨을지. 그 순간의 마음 상태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갈치를 씻고 다듬고 토막 내어 얼렸다가 시상식에서 나를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들고 가서 냉동실에 다시 넣어두기까지. 선생님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가 선생님을 비롯한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같다는 것을 안다.


2월 들어 받기로 한 갈치 한 토막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선생님댁 냉동실에서 계속 대기타는 중이다. 이러다가 우리집 냉동실 속 정체불명의 화석덩어리처럼 변해버리는 건 아닐까? 아니다. 선생님댁 냉동실은 우리집 냉동실보다 상태가 쾌적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 맞다. 갈치는 냉동실 속에서도 안녕할 것이다. 아니, 안녕해야만 한다. 나는 선생님이 내게 주려던 갈치 한토막에 들어 있는 애정을 그대로 돌려받고 싶다. 그래서 그 갈치 한 토막에 들어 있는 정성스러운 마음과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을 배워 잘 실천하며 살고 싶다.


선생님이 쓴 동시, 소금이 온다 속 소금처럼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는 희소식으로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갈치 한토막 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4월에는 받아야 할텐데....



갈치와 함께 사진틀도 가져오시라 해야겠다. 축하글 한줄은 꼭 , 남기고 싶으니까.



소금이 온다. - 신혜영


할아버지 병원에 있으니

소금밭이 고요하다

끌어올린 바닷물이 없으니

말릴 바닷물이 없다

할아버지가 밀던 대파*는

창고 앞에 기대어

할아버지 땀내를 풍기는데

물 삼키던 햇볕은

애먼 땅만 쩍쩍 가른다

새싹 같고 볍씨 같고

눈꽃 같던 소금꽃들

할아버지 땀이 등판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얀 살 찌우던 소금꽃들


푸른 바다는 멀리서

꽃 피울 준비하며 애태우고 있을까

할아버지 소금이 없으니

세상엔 소금이 좀 부족해졌을까


빈 염전에 바닷물 한 줌 흘려놓곤

주문을 넣는다


할아버지가 온다

소금이 온다


* 염전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



ps) 이 글을 올릴 때마다 오류가 나서 포기하는 중이다. 진짜 마지막으로 다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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