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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17. 2020

머리밑이 간지럽다는 건, 나이 든다는 것

흰머리가 나려다 보다


몇 년 전부터 두피가 간질거렸다. 가끔씩 그랬는데 요즘 특히 심하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을 보다가 정수리에 삐죽이 솟아 나오는 흰 머리카락을 보게 되었다. 그 양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흰머리를 보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순간과 마주하면 낯설다.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은 모두 예전과 다르지 않은 듯한데, 하물며 사춘기 시절 까불대던 장난기도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 어쩌자고 외양만 고스란히 세월의 흐름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아주 조금 억울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겉이 낡아지는 것만큼 감정도 그에 발맞춰 퇴색된다면 사는 게 더 쉬워질까,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늘 젊어 보였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동안이었다. 게다가 두 분 다 흰머리가 늦게 난 편이었다. 엄마는 예순이 넘어서도 흰 머리카락 개수가 몇 개 되지 않아 족집게로 늘 뽑아내셨다.


2년전. 81세때 엄마의 머리에는 검은 머리카락도 꽤 많았다.


그 유전자의 영향인지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50대 중반임에도 흰머리가 없다. 정작 막냇동생인 나는 50세를 기점으로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두 언니는 막내가 머리 밑이 간지럽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간지러운지, 정수리에 있는 흰머리를 뽑아낼 때 하도 눈을 치켜떠서 이마에 잔주름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와 큰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두 사람은 소파에 앉은 후 나를 바닥에 앉힌다. 그래야 높은 곳에서 내 머리 꼭대기를 잘 내려다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둘이 서로 내 흰머리를 뽑겠다며 성화다. 엄마는 돋보기까지 끼고 내 흰머리를 뽑아 주신다. 그때마다 엄마는 속상해하며 장탄식을 늘어놓으신다.


"막내가 흰머리가 있으면 어떡하노?"

"헉. 엄마. 막내라도 나이가 오십이 넘었쪄요."

"세상에 우리 막내가 언제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본인 나이 드는 건 안중에 없고 막내딸 흰머리 생기는 것만 안타까운 엄마는 뽑다가 눈이 시큰 거리면 큰언니에게 족집게를 넘기신다. 그러면서 꼭 "까만 거 뽑지 말고 흰 거만 뽑아라."라고 당연한 말씀을 연거푸 하신다. 그러면 큰언니는 '자기를 바보로 아는 거냐'며 투덜거린다. 큰언니는 내 흰머리 뽑는 게 재미있는지 지치지도 않고 뽑아내며 완벽히 처리해 주고 돌아간다. 다음에 큰언니가 흰머리가 생기면 내가 족집게 들고 가서 뽑아 줄 날이 있을 거다.


내 흰머리가 아직은 뽑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언젠가 염색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냥 자연스럽게 나이 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기어코 내 흰머리를 다 뽑아내시는 건 자연스러운 건가???? 알다가도 모를 엄마 마음)


엄마의 머리가 전체적으로 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지 이제 십여 년쯤 된 듯하다. 한 번도 염색하지 않은 채 흰머리를 고수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너무 급격히 일시에 변해버리는 게 아니라면 근 20년 동안 멋내기 염색 한 번도 안 하고 버텨 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너무 하얘져 버리면 바로 염색할 마음도 있음)


엄마도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당시에는 머리 밑이 참 많이 간지러우셨을 거다. 내가 겪어보니까 그 간지러움의 정도를 알겠다. 늙는다는 건, 늙으신 엄마를 이해할 거리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과 같다. 엄마의 딸에서 엄마의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니

나이드는 건... 슬프지 않다.


다만

.

.

.

간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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