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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Jul 05. 2020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일어선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주는 부모의 마음

딸 너에게


<시와 동화>라는 계간지가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석 달에 한 번씩 발간되는 잡지야. 

동시, 동화 작가들의 작품과 평론, 심사평 등이 실려. 

그 잡지를 20년 넘게 발간하고 계신 

강정규 선생님은 원로 동화 작가시란다.


동화를 쓰시던 선생님께서 첫 동시집을 내셨던 그때. 

선생님의 인사동 인문학 교실에서 

여러 동화 작가님들과 함께 고전 공부를 했었어. 

연로하신 선생님의 첫 동시집은 

시와 그림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귀엽고 앙증맞았단다. 

선물 받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했었지.




가끔씩 웃음이 메말라 갈 즈음

엄마는 책꽂이 한쪽에 꽂혀있는 동시집들을 꺼내. 

한두 편 시를 읽고 제자리에 도로 꽂아둔단다. 

시 한두 편에 속이 편안해지곤 해. 

체했을 때 마시는 매실액처럼 

좋은 시는 막힌 가슴을 쓸어내려 주지.


좋은 시, 좋은 글은 읽는 바로 그 순간 

느낌이 올 때가 있어.

쉬운 글이 좋은 글이고 

쉬운 글쓰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정규 선생님의 시는 정말 쉬운 단어로 쓰여 있어서 

읽다 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이해하게 된단다. 

그 짧은 몇 줄 속, 삶의 깊이를 가늠하다가 

고개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 

좋은 시의 힘이다.


첫 손녀와 함께 다가온 시를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곱다. 

시를 읽다 보면 절로 미소 지어지고 

그 순간의 근심 걱정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연로하신 선생님이 처음 시를 만난 그즈음의 이야기도 

한 편의 동화와 같아.



<참,>  


눈이 내리던 날

첫 손녀를 보았다.

그와 함께

시도 왔다.

하느님은 참,

많은 걸 주신다.


처음에 소설을 쓰다

동화를 쓰고,

나이 일흔에

시집이라니,

빚만 늘고

참 미안하다




<갓난아기>


어제까지

없었는데

오늘

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톱도

작다




<연우>


아랫니에 이어

윗니 두 개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우뚝

연우가 일어섰다


천장이,

아니 하늘이 그만치

내려왔다.




<길>


연우가 드디어 걷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갈까

어떤 길을 갈까,

그도 저도 아닌

연우의 길을 가면 좋겠다

연우니까




선생님의 첫 손녀 연우가 태어나면서 

그 기쁨이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는구나. 

애정 어린 눈길로 손녀를 바라보는 모든 순간들은 

시상(想)으로 떠올라 

수십 편의 별처럼 아름다운 동시(詩)로 태어났지.


어제까지는 없던 손녀가 오늘은 있는, 

이 기적 같은 탄생은 

할아버지의 내재된 시심(心)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짧으면서도 명징한 언어로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들을 전한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말씀과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이 짧은 문장 안에 다 녹아들어 가 있단다.


할아버지에게,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길 앞에서 

어른들이 주신 든든한 믿음의 말씀을 뒷배경으로 

자신만의 행보를 당당히 펼칠 수 있을 거야. 



<자전거 1>


뒷바퀴가

끈질기게

쫓아온다



<자전거 2>


달리지

않으면

쓰러진다



<자전거 3>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일어선다





<자전거> 시 석줄마다에 

손녀에게 주는 인생 메시지가 들어있다.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끝내는 일어서게 된다는 건 

자전거를 타본 누구나가 아는 진리야. 

너도 알고 있지?

처음 자전거 탈 때 쉽지 않았던, 

균형 잡으며 앞으로 내달리기. 

그 순간을 떠올려 본단다. 


인생 선배님께서 동시를 통해 

나에게 전해 주시는 메시지를 두 손에 받아 들었어.

중년이라고, 노년이라고 해서 

인생길 위를 안전하고 평화롭게만 달릴 수 있는 건 아냐.

달리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고꾸라질 수도 있지. 

그때마다 쓰러졌다고 

반대쪽으로 도망쳐버리기보다는 

몇 번은 더 도전해서 

바로 일으켜 세워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그렇게 하다가 정 못하겠으면 

그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인생길 수만 가지가 있다. 

그러니 '단 하나뿐'이라는 고집은 조금 내려놓되
부지런한 시도는 계속해보는 쪽으로.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단다. 

그리고 내 딸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손녀, 연우가 그렇듯이...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 보자.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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