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일어선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주는 부모의 마음
딸 너에게
<시와 동화>라는 계간지가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석 달에 한 번씩 발간되는 잡지야.
동시, 동화 작가들의 작품과 평론, 심사평 등이 실려.
그 잡지를 20년 넘게 발간하고 계신
강정규 선생님은 원로 동화 작가시란다.
동화를 쓰시던 선생님께서 첫 동시집을 내셨던 그때.
선생님의 인사동 인문학 교실에서
여러 동화 작가님들과 함께 고전 공부를 했었어.
연로하신 선생님의 첫 동시집은
시와 그림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귀엽고 앙증맞았단다.
선물 받으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했었지.
가끔씩 웃음이 메말라 갈 즈음
엄마는 책꽂이 한쪽에 꽂혀있는 동시집들을 꺼내.
한두 편 시를 읽고 제자리에 도로 꽂아둔단다.
시 한두 편에 속이 편안해지곤 해.
체했을 때 마시는 매실액처럼
좋은 시는 막힌 가슴을 쓸어내려 주지.
좋은 시, 좋은 글은 읽는 바로 그 순간
느낌이 올 때가 있어.
쉬운 글이 좋은 글이고
쉬운 글쓰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정규 선생님의 시는 정말 쉬운 단어로 쓰여 있어서
읽다 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이해하게 된단다.
그 짧은 몇 줄 속, 삶의 깊이를 가늠하다가
고개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
좋은 시의 힘이다.
첫 손녀와 함께 다가온 시를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곱다.
시를 읽다 보면 절로 미소 지어지고
그 순간의 근심 걱정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연로하신 선생님이 처음 시를 만난 그즈음의 이야기도
한 편의 동화와 같아.
<참,>
눈이 내리던 날
첫 손녀를 보았다.
그와 함께
시도 왔다.
하느님은 참,
많은 걸 주신다.
처음에 소설을 쓰다
동화를 쓰고,
나이 일흔에
시집이라니,
빚만 늘고
참 미안하다
<갓난아기>
어제까지
없었는데
오늘
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톱도
작다
<연우>
아랫니에 이어
윗니 두 개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우뚝
연우가 일어섰다
천장이,
아니 하늘이 그만치
내려왔다.
<길>
연우가 드디어 걷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갈까
어떤 길을 갈까,
그도 저도 아닌
연우의 길을 가면 좋겠다
연우니까
선생님의 첫 손녀 연우가 태어나면서
그 기쁨이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는구나.
애정 어린 눈길로 손녀를 바라보는 모든 순간들은
시상(詩想)으로 떠올라
수십 편의 별처럼 아름다운 동시(童詩)로 태어났지.
어제까지는 없던 손녀가 오늘은 있는,
이 기적 같은 탄생은
할아버지의 내재된 시심(詩心)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짧으면서도 명징한 언어로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들을 전한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말씀과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이 짧은 문장 안에 다 녹아들어 가 있단다.
할아버지에게,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길 앞에서
어른들이 주신 든든한 믿음의 말씀을 뒷배경으로
자신만의 행보를 당당히 펼칠 수 있을 거야.
<자전거 1>
뒷바퀴가
끈질기게
쫓아온다
<자전거 2>
달리지
않으면
쓰러진다
<자전거 3>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일어선다
<자전거> 시 석줄마다에
손녀에게 주는 인생 메시지가 들어있다.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 끝내는 일어서게 된다는 건
자전거를 타본 누구나가 아는 진리야.
너도 알고 있지?
처음 자전거 탈 때 쉽지 않았던,
균형 잡으며 앞으로 내달리기.
그 순간을 떠올려 본단다.
인생 선배님께서 동시를 통해
나에게 전해 주시는 메시지를 두 손에 받아 들었어.
중년이라고, 노년이라고 해서
인생길 위를 안전하고 평화롭게만 달릴 수 있는 건 아냐.
달리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고꾸라질 수도 있지.
그때마다 쓰러졌다고
반대쪽으로 도망쳐버리기보다는
몇 번은 더 도전해서
바로 일으켜 세워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그렇게 하다가 정 못하겠으면
그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인생길 수만 가지가 있다.
그러니 '단 하나뿐'이라는 고집은 조금 내려놓되
부지런한 시도는 계속해보는 쪽으로.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단다.
그리고 내 딸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손녀, 연우가 그렇듯이...
쓰러지는 쪽으로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서 보자.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