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너에게.
네가 주었던 문자들을 살펴볼 때가 있어.
너도 알지?
엄마는 미니멀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맥시멀리스트라는 걸.
네 문자도 안 지우고 다 가지고 있단다.
굳이 삭제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계속 쌓였던 건데
이게 나름 장점도 많아.
네가 보낸 문자를 보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를 갔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등등
짧은 글 속에서 너의 모든 것을 눈치챌 수 있거든.
서로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들을 보니
우리들의 문자는
모녀가 같이 쓴 '간단 일기' 같다는 생각도 들어.
사춘기의 '너'와 갱년기의 '내'가 함께 쓰는
'문자 일기' 말이야.
강아지는 무섭지만 귀엽기도 하니까요.
너는 나한테 귀여운 동물 사진들을 자주 보내지.
인형 같은 눈망울의 동물 사진을 보면
나도 감탄할 때가 많아.
네가 다섯 살 때쯤.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개 두 마리가
우리들한테 달려든 적이 있었어.
너도 기억날지 모르겠다.
놀란 나는 너를 안아 들고 막 도망쳤는데
세상에나, 한 성질 하는 그 개들이 우리를 쫓아와서
얼마나 사납게 짖어대든지
벤치에 뛰어 올라가 벌벌 떨었단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개 목줄을 안한채
공원에 나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거든.
개 주인이 놀란 우리들한테 사과도 안 해서
엄마가 화를 냈던 기억이 있어.
그 후 자연스럽게 너랑 나는
사나운 개, 막 짖는 개, 으르렁대며 무섭게 구는 개.
다 무서워하게 되었지.
그런데 우리 둘 다 귀여운 강아지 사진 보는 건
또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말이야.
너는 귀여운 동물들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나에게 사진을 보내주지.
날씨에 따라서 네가 보내주는
동물 사진들도 참 다양했어.
더운 날은 차가운 바닥에 널브러진
깜찍한 강아지 사진을 구해서 보내줬잖아.
이런 귀여운 사진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단다.
지금은 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예전에는 물고기, 누에, 달팽이, 사슴벌레 등등을 키웠어.
네가 초등학교 때
생명 과학반 활동에 참여하고 받아온 동물들을
정성껏 키운 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준 적도 있어.
무서워해도 동물들의 생명이나 안전이
우리들의 것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건 너무 잘 알았지.
파양된 동물이나 학대받는 동물 이야기에는
여전히 마음 아파하며 문자를 보내는 널 본다.
살 뺄 생각 있으신 거 맞나요??
3년 전, 15세 때만 해도
너는 보통 키에 40 킬로그램 전후의 상태였지.
(그런데 마음이 편해지고 사는 게 넉넉해져서인지^^)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50킬로그램이 넘었어.
그 사이 키도 165센티 이상 컸고
그러니까 50킬로가 훌쩍 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살이 한꺼번에 찌니까 움직임이 둔해졌고
무엇보다 살찐 네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다이어트 선언을 하더라.
근데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지?!
날마다 살 뺀다는 너의 말 끝에는
열심히 먹고 있는 사진들이 수없이 따라와.
살을 뺀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엄마는 도대체 네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먹은 음식 사진을 보내는 데에서만 끝내는 게 아니고.
먹고 싶은 리스트까지 작성해서 보낼 때면
나는 더 당황스러워.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모르겠어.
다이어트하라고 안 사준다고 해야 할지
먹고 싶다고 하니 다 사줘야 할지.
밥 비벼 먹는 간장 사다놔라, 콩고물 페스츄리 사다놔라 등등
구체적인 명칭을 알려준 덕분에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먹을 것을 사놓지.
그 덕분에 너를 따라서 돈코츠라멘도 먹어 봤어.
신전떡볶이, 치즈볼, 순댓국, 멜론빵, 불닭 볶음면,
메로나, 아마스빈 버블티, 공차 등등.... 다 먹어 봤다.
네가 아니었다면 순댓국 빼고는 아무것도 안 먹어봤을 거야.
나 혼자였다면 별로 손대지 않았을 먹거리들이었거든.
엄마, 사랑해요.
너는 밖에 나갔다 하면 순간 포착도 기막히게 잘하지.
귀엽든지, 특이하든지, 이상하든지...
무엇이든지 네 눈에 걸렸다 하면
사진 찍어서 나에게 바로 보내주곤 했어.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면
'엄마, 사랑해'라고 하면서
이런 사진들을 '투척' 해주는 통에 참 많이 웃었다.
우리 모녀는 문자로 싸우기도 화해하기도
서로 다독이기도 하지.
네가 나한테 화내고 짜증 낸 날은
먼저 문자로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도 하지.
그럼 나는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으면 되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긴긴 설교를 하고 만다.
미안해.
엄마도 이런 버릇은 고쳐 볼게.
나는 너와 언쟁을 벌이고 나면
먼저 미안하다는 말도 잘 안 하는데
너는 나에게 사과의 문자도
참 많이 보냈더구나.
엄마를 반성하게 만들고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자들이었어.
고마워.
너 혼자 끄적거린 글들을
나에게 보내 줄 때도 있지.
엄마는 네가 쓴 글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않아.
뭘 일일이 가르치려고 하는 것
엄마이면서 '선생님'처럼 구는 것.
이런 행동은
사이좋은 모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
그래서 어떤 간섭도 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지.
(실행이 어려워서 실수가 잦지만 말이야)
휴대폰으로 검색하다가 좋은 내용이 있으면
나한테 링크도 걸어주지.
서점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거나
책을 보다가 문장이 마음에 들면
그것도 사진 찍어서 보내주더구나.
그런데 말이야.
책 읽다가 발견한 오타도 밑줄 치고 보내줄 때면
'나... 나더러... 어쩌라고? 이미 나온 책인데.'
난처하기도 하단다.
재미있게 읽은 책은 나에게 '강추'를 날려주기도 하는 너.
고맙다고 말만 하고는
여전히 다 읽지 못한 엄마라서 미안해.
너는 길 가다가도
좋은 글이나 시를 발견하면 나에게 보내주지.
공중화장실이건 지하철 플랫폼이든 가리지 않아.
근데 나는 항상 그게 궁금했어.
'너는 그 글들을 다 읽고 보내는 걸까?'
하긴, 안 읽었으면 뭐 어때.
나는 '엄마 생각'해서 좋은 글을
문자로 꼬박꼬박 보내주는 너의 마음만 본단다.
평생 올빼미로 살던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고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는 모습이
너는 무척 걱정됐었나 봐.
딱히 뭔가 열심히 하지도 않는 엄마인데
너는 나만 보면 '쉬엄쉬엄'하라고 말하지.
근데 말이야.
네가 들려주는 '쉬엄쉬엄'이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그냥 '쉬엄쉬엄'이라는 그 단어 속에는
'나는 네 편이야. 네가 뭘 못해도 네 편이고,
하다가 망쳐도 네 편이야.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해.'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거든.
너는 든든한 내 편이 맞아.
며칠 전에는 내게 보내 준 문자에 울컥했어.
엄마도 나의 엄마의 품이 따뜻했던 걸 기억한단다.....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늘 마음을 표현해 주는 네가, 나는 참 고마워.
그에 비해 나는 엄마로서 많이 부족했어.
너를 귀찮아하기도 했고,
마음에 안 들어도 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원망도 해봤고,
때론 부끄럽게 여긴 적도 있었거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엄마라는 자리는 처음이고,
게다가 엄마라 불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어.
실수 연발 끝에 눈물짓고 후회하지만
그래도 또 툭툭 털고 일어나서 열심히 살아야겠지.
나는 엄마니까 말이야.
이렇게 매일 나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네가 있으니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좋은 친구 하나를 곁에 둔 셈이란다.
너는 나의 딸인 동시에 친구지.
그리고 나의 스승이기도 해.
내가 더 반듯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들어 주니까 말이야.
일요일 아침.
늦잠 자는 스승님을 깨울 시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