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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Jun 14. 2020

모두가 싫어하는 깍두기 맛 호박전

딸, 너의 거침없음을 계속 사랑할 거란다.


딸, 너에게.


엄마는 뭘 자꾸만 깜빡깜빡해.

그래서 냉장고 속에 애호박이 있는데도 

또 사고 또 사서

어느 날은 애호박 세 개가 나란히 들어있기도 했지.  


너는 엄마에게 냉장고 속 음식을 싹 다 먹고

장을 보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돼. 

살림을 하다 보면 음식 재료의 양을

딱딱 맞추지 못할 때도 있거든.

뭐가 많이 남거나

반대로 부족하거나 하기 일쑤지. 


네가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애호박을 처리해 주겠다고 선언했을 때

엄마는 기쁘더라.

엄마가 호박전을 좋아하잖아.

'딸 하나 잘 키웠더니

엄마 좋아하는 호박전도 척척 만들어주네.'

싶어서 뿌듯하기도 했지.


너는 예의 그 '거침없음'을 총동원하여

도마 위에다가 길쭉한 애호박을 놓고

칼로 듬성듬성 자르더구나.


호박전을 하려고 하면서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잘라도 되는지

엄마는 50 평생에 또 처음 알았단다.


그렇게 작정하고 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로

네가 자른 애호박들 단면 하나하나의 굵기가

모두 다르더구나.


엄마는, 

자른 애호박들 위에 소금과 후추 간을 하고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씌워 

프라이팬에 굽는 시범을 보여줬지.

너는 충분히 알아 들었다며

잘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엄마 할 일을 어서 하라고

나를 주방에서 밀어냈지.





나는 마침 재활용 쓰레기를 버려야 해서

쓰레기 더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단다.


너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순간.

나는 의심 없이 그냥 믿기로 결심했거든.

내가 내 딸을 안 믿으면

누가 내 딸을 믿어 주랴 싶어서 말이야. 

나는 네가 호박전을 잘 부칠 거라고 믿고 

밖으로 나갔어.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계단 오르기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화들짝 놀랐단다.

집에 불난 줄 알았잖아.ㅜㅜ

집 안 가득 웬 연기가 그렇게 많던지.

달랑 애호박 하나 잘라 부쳤을 뿐인데...

시장 부침개 가게처럼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더구나.


그리고 너는 예외 없이 

일을 다 해놨다며

소파에 누워서 놀고 있더라.


네가 만들어 놓은 호박전을 보고 

엄마가 '꺄악' 소리 지른 거 기억나지? 

접시 하나에 수북하게 막 때려 담아놓은 호박전.

아니, 호박 무더기라고 하는 게 적당하겠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남은 계란이 아까웠는지 그걸

계란말이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더라



그나마 보기 좋은 쪽으로 다 뒤집어 놓아서 이 정도. 반대편은 상상 그 이상 ~~


하나 딱 먹어봤어.

설컹 설컹 설컹

호박전의 호박. 그 속까지 익기에는

두께가 너무 두툼했어. 

맞아. 나는 다 이해해.

첫 시도에 호박전이 그렇게 쉽게 부쳐지면  어떡해? 

그렇지?!


아빠와 엄마는

저녁상에 네가 수북하게 쌓아 올린

호박전 무더기를 놓고 밥을 먹었단다.

근데 우리 둘 다 그날따라 입맛이 좀 없더라.

그 호박전 무더기가 우리의 입맛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냥 요새 날이 좀 갑자기 더워졌잖아?

그래서였을 거야.  


호박전 하나를 씹던 아빠가 말하더구나.

"호박전이 참..... 아삭아삭하다. 

희한하게 호박전에서 깍두기 맛이 나."


너희 아빠는 반찬 맛없다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한 적은 평생 한 번도 없어.

다만 맛없다는 걸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지.


그러더니 내게 묻더라.

"이걸 왜 우리만 먹어야 해???"

무척 억울했나 봐.


"쟤는 저녁 안 먹는대. 배부르다고."

내가 말했지. 


그랬더니 아빠가

"얼른 가서 데려와. 

호박전 깍두기 맛은 온 가족이 같이 공유해야 돼.

우리 둘만 느낄 수는 없어."

부득부득 우기더라. 


더위에 지친 나는 너무 귀찮아서 

"그냥 우리끼리 먹어."

했거든.


근데 네 아빠는 포기를 모르는 타입이잖아.

"안돼. 그렇게 나만 벌 받고 싶지는 않아.

얼른 데려와. 쟤도 이 맛을 반드시 봐야 해."





그런데 너는 미리 맛본 놈 같더라.

절대 네가 만든 호박전을 먹으려 하지 않더구나.


호박전을 먹이려는 놈과

호박전을 극구 안 먹으려는 놈과

호박전 다음 반찬을 맞이하기가 두려운 놈

저녁밥상을 사이에 둔 

놈놈놈들의 각기 다른 생각이 불꽃을 튀었지. 


다음에 네가 어떤 종목에 도전을 할지는 모르겠어.

결과가 늘 기대를 뛰어넘든지, 

너무 뛰어넘어 저 밖으로까지 달아나든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네가 생활 속에서 하는 모든 소소한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는 늘 정겹고 즐거운

추억이 될 거라는 것 말이야.


그러니

거침없는 내 딸아,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부딪혀서 다 해보면서 살아라.


아무도 먹지 않을 호박전

누구도 먹어 주지 않을 호박전일지라도

엄마랑 아빠가 다 먹어줄게.

기꺼이 먹어줄게.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 줄 거야.

우리가 다 해결해 줄 거야.

(아빠가 안 먹고 도망가면

붙잡아서라도 억지로 먹일게)


그러니까 

너는

늘 자유로워라.

늘 새로워라.

늘 행복하거라.


사랑하는 

내 딸아. 



계란을 충분히 묻히지 않으면 밀가루가 허옇게 드러난단다. 얘야. 


양호한 녀석들로만 엄선되어  드러누워 있음, 희한하게 깍두기 맛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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