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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24. 2020

딸아, 당면 대파 계란탕 부침이 뭐니?

요상한 조합이 만들어낸 난해한 음식이지만. 맛있다


딸, 너에게. 


너 요새 왜 그래?

왜 자꾸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때마다 엄마는 많이 당황스러워.


네가 며칠 전부터 했던 말 있잖아.

"엄마, 앞으로 밥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 말을 믿었던 건 아냐.

라면 하나도 안 끓이던 네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밥상을 차리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설마 내가 아무리 밥하기 싫어하기로서니

이제 겨우 열여덟 살 된 너에게

밥을 시키겠니?


근데 엊그제 아침,

네가 나를 부르더니

스팸 계란덮밥이 준비되었다고 하더라.

'설마?' 하고 나가봤더니

너는 의기양양하게 세팅을 마치고

나를 쳐다보더라고.


근데

나, 이런 복합적인 감정 느껴보기 처음이야.

한편으로는

네가 엄마 먹으라고 차려준 밥이라는 생각에

울컥 감격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거 나 먹으라고 해 준거 맞아??'

싶기도 했어.



의기양양 스팸 계란 대접 밥


엄마 편하게 드시라고 (너무 편해서 드러누울 지경)

대접에 밥을 퍼담는 과감성.

그 위에 바싹 구운 스팸과

계란부침을 때려 붓는 결단력.

숟가락과 젓가락에게도

때론 이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지레짐작.

(숟가락이랑 젓가락 사이에 대접 놓는 경우 처음이야)


이 모든 걸 맞닥뜨린 나는 순간 아찔했지.

옛날 옛날 엄마의 시골 할머니 댁 마당에 있던

집 지키던 그 개가 생각난 건,

그 개의 밥그릇이 생각난 건,

내가 철딱서니 없는 엄마이기 때문일 거야.

내 딸이 나를 위해 세팅해 준 첫 식사에

어디 경망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냔 말이지.

미안해.


그런데 맛은 있더라.

하긴 스팸은 어떤 식으로 먹어도

맛이 없을 수 없는 식재료지.

그건 그냥 뚜껑 따고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밥 한 그릇 다 먹게 만드는 요술 아이템이야.

첫 식사 준비로 스팸을 선택한

너의 탁월함을 인정해.


음. 근데 계란에는 소금을 안 넣었나 보더라.

아니지 아니야.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널 책망하는 게 절대 아니란다.

설탕을 털어 넣지 않은 네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어.

스팸이 워낙 짭조름한 아이템이잖아.

엄마 혈압 생각해서 계란에는

일부러 아무것도 안 넣어

비릿하고도 밍밍한 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한 너의 고집.

인정할게.

계란은 좀 비려야 제맛이지.


나는 네가 처음으로 해준

대접 밥을 푸지게 먹고 나서

기분이 참 좋았나 봐.

내리 두 시간을 자버렸어.

낮잠도 아닌 아침잠을 말이야.

혹자는 대접 밥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형식 파괴 대접 밥'이 준

편안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드러누워 잘 수 있었지.


나는,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접 밥을 세팅하고 나서는

음식에서 손을 뗄 줄 알았어.


근데 너는 예상 밖의 행보를 펼치더구나.

점점 더 과감하게 말이야.

대파 한 줄을 엄지손가락 굵기로 

깍둑썰기 하더라.





가스불 위에서는 당면을 삶더구나.

'서.... 설마, 잡채에 깍둑파를 넣는 만행을 부릴까?'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사이




계란을 네 개씩이나 꺼내서 싱크대 위에 막 굴리더구나.

'왜 그렇게 많이 꺼냈냐?'라고 묻자

'여섯 개에서 두 개 줄인 거'라고 대꾸하더라.

나는 한 끼 식사에 계란 네 개를

써본 적이 없는 손 작은 여자야.

너는 내 딸 같지 않게 뭐든 거침이 없더라.

(아니.... 새.. 생각이 없는 건가???)



도대체 뭘 만들지 궁금했는데

너는

깍둑썰기 한 굵은 파에 당면 삶은 걸

또다시 처참할 지경으로 마구 섞어버리더구나


결코 같이 섞일 일 없던 요상한 조합. 대파와 당면



그 후 너는 계란 네 개를

인정사정없이 깨트려 당면 대파 섞음에다가

투하하고 정신없이 휘저었지.


사방팔방으로 계란 물이 튈 때

그제야 나는 알았어.

네가 계란을 왜 네 개씩 깨뜨려 넣었는지.

그중 두 개는 싱크대에 줄줄 흘릴 요량이었던 거지

그 덕분에 싱크대가 계란 마사지를

제대로 해서 빤짝빤짝 빛나더구나



개구리알 같은 거품의 정체가 뭘까 했더니 중간에 참기름도 쏟아부었다고 이실직고하던 너



나는 너는 실용주의에 감탄했어.

설거지할 그릇의 개수를 줄여야 한다며

당면 삶은 웍에다가

이 정체불명의 당면 대파 계란탕을

끼얹더구나.


그제야 나는 당면 대파 계란탕이

탕이 아니라

부침개가 될 재료였다는 걸 깨달았다.

프라이팬 대신 웍에다 부침개를 굽던 너!


깍둑 썰기한 대파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죄다 부침개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더구나.

도로 붙잡아 부침개 속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지만

따로 먹어도 견딜만한 맛이었다.




엄마는 말이지.

50 평생에 이런 식의 부침개는 처음이야.

생파 맛이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부침개.

재료들끼리 죄다 따로 노는 부침개.

화합과 상생을 거부하는 부침개.

이런 부침개는 처음이었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말이지.

이게 그런대로 맛이 난다는 거였어.

네가 소금 간을 해놨기에

밥반찬으로 먹을만했단다.


너는 아빠도 드시라고 넉넉히 했다지만

그 넉넉한 인심.

아빠한테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부득부득 그 인심을 보여주겠다고 떼를 쓰면

분명

네 아빠는 이렇게 말할 거야


"맛있네. 잘했다."

.

.

.

"근데 두 번은 안 해도 돼.

또 하면 화낸다!"

.

.

.

그럼 너는 기다렸다는 듯 말하겠지?

"응. 다른 메뉴 해 줄 거야. 기대해."

('기대'가 이토록 무섭게 들리는 단어인 줄

처음 알았어)






엄마 나이 열여덟 살에

엄마는 할머니가 해주는 밥과 반찬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먹기만 했어.

아니, 스물다섯 살 때까지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이 없었어.


엄마는 그 나이 먹도록

자립 능력이 빵점이었어.

돈만 펑펑 쓰고

꾸미고 멋 부리는 재주만 능했지,

내 입에 들어갈 음식 하나 할 능력이 없었단다.

집안일하는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게

남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아주 많이 모자란 사람이었어.


그런데

딸, 너는  말이야.

나보다 훨씬 넘치는 사람이구나.

재료란 재료는 뭐든 때려 넣는 것처럼

또 인심이 후한 것처럼

그렇게 차고 넘친다.


오늘 엄마가 좋은 시 하나를 선물 받았거든.

"시작한다는 것은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

그 낮은 확률에도 희망을 갖고

나의 길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

라는 시 앞에서

열심히 반찬을 만드는

네가 떠올랐단다.

그리고 눈물도 또 찔끔 났어.


너는 이미 시작했으니까

너는,

네가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

모두가 다 아니라고 해도

네 믿음으로 너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갈 사람이지.


그 사실을

나도 믿고

너도 믿지.


그러니까

거침없이

너의 길을 향해 나가거라.


사랑하는

내 딸아.



난해하고 거침없는 당면 대파 계란탕 부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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