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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07. 2020

미스터 트롯, 임영웅을 몰랐을 뿐인데 몰매맞을 뻔.

1가구 1 임영웅이 시급해 보임


엊그제 어린이 날. 친정엄마가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언니, 오빠와 만났다. 정작 우리의 아이들은 스케줄이 있어서 다 빠지고 팔순의 노모와 50대에 접어든 4남매, 그들의 배우자들만 만났다.


엄마는 늙어가는 우리들이 가끔씩 어린이로 보이나 보다. 어린이날, 식당에서 어린이가 단 한 명도 없는 테이블은 우리들 뿐이었다. 식당 손님의 평균연령을 엄청나게 올려 놓으며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웃고 떠들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팔순 엄마와 중년의 어린이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슬쩍 내미셨다.


웬 청년 사진이 하니 붙어 있어서 큰 조카인 줄 알고 자세히 봤더니 아니었다.  엄마는 아끼는 큰손자 대신 모르는 남의 집 아들 사진을 붙여서 지니고 다녔다. 거참 희한한 일일세~



노모의 핸드폰에 스티커 사진으로 붙어있는 청년



큰 언니에게 사진 속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니 이 사람을 정말 모르냐며 대답 대신 질문을 한다. 어리둥절하는 나와 남편을 보며 모든 가족들이 어떻게 이 사람을 모를 수 있냐며 황당해 했다.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트롯 진이 된 임영웅이란다. 사람 이름이 영웅이다. 성은 임이고. 나는 드라마는 가끔씩 봐도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은 거의 안 본다.


코로나 기간 동안 친정 식구들을 만나지 않은 사이 그들은 세트로, 단체 관광버스 탄 사람들 마냥  임영웅의 광팬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오마나.....








일단


<83세 되신 엄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임영웅의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심.

하루 종일 임영웅 노래를 백그라운드 삼아 신문 보고 집안일하신다고 함.

짬짬이 유튜브로 노래 들으며 따라 불러서 전곡 다 아심.

노래가 애절해서 눈물 흘리신 적도 있다고 함.



<56세 큰언니>


임영웅이 잘 마신다는 OO 유업 바리스타 룰스 커피를 박스째 놓고 드링킹한다고 함.

임영웅이 모델인 홈쇼핑 화장품을 사서 동생들에게 막 줌. 그래야 또 사서 매출 올려 줄 수 있으니까.

미스터 트롯 방송하는 날은 본업인 약국을 10분 먼저 닫고 전력질주해서 집에 간다고 함.

본인 말에 의하면 미친 듯이 날아간다고 함.



<54세 작은언니>


일본어 강사이나 일본어를 많이 까먹은 대신 그 자리에 임영웅 정보를 AI 수준으로 탑재함.

임영웅의 아줌마 팬들이 1억 4500만 원 모아서 기부했다는 사실 전함.

아줌마 팬들이 OO 유업에 전화해서 임영웅이 잘 마시는 바리스타 룰스 커피 모델 시켜달라고 떼쓴^^ 것도 알고 있음.

거기에 언니도 일조한 게 아닌지 매우 의심되는 상황.






큰언니는 40년째 가수 조용필의 골수 팬으로 각종 콘서트, 디너쇼에 다 간다. 비가 오면 비옷 입고 장대비를 맞으며 서너 시간씩 꼼짝 않고 구경하는 사람이다.


그때마다 엄마와 함께 다닌다. 엄마는 언니가 가자니까 마지못해 따라다녔다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임영웅 콘서트를 하면 노모가 가장 먼저 앞장서실 기세다. 세 모녀가 함께 다닐 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두 달 넘게 집 밖 출입을 삼가신 엄마에게 임영웅은 자식 보다 더한 효도를 한 셈이다. 엄마는 임영웅 노래 듣는 재미로 코로나가 지루한지도 몰랐고 날마다 기분이 좋았다고 하신다.  


임영웅 이외에도 미스터 트롯 출연진들을 줄줄이 섭렵하고 그들의 특징과 사연들까지 다 알고 계신 노모가 나는 참 반갑다. 83세에도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그들의 콘서트를 기다리고, 그들이 나온 제품을 사주는 열정. 아무것도 안 좋아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보다 이 얼마나 건강한 감정인가!  


할머니가 주책이다. 라는 말은 맞지 않다. 육신은 늙어도 감정은 늙지 않는다는 걸 매 순간 느낀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 음악을 즐기는 취미를 가진 노년층과 중장년층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는 엄마와 언니들의 생기발랄한 표정을 보면 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 집에 보일러 놓아드리듯. 1가구 1임영웅을 초빙, 보급해 드리고 싶다.


임영호?라고 이름 잘못 말했다가 그녀들에게 몰매 맞을 뻔한 나도 이제는 '임영웅'을 기억해야겠다.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가수라는데.... 내가 그리 무심해서야 쓰겠는가!


나도 덩달아 그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저처럼 임영웅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 투척. 반듯한 청년같음~


임영웅 덕에 공짜로 생긴 화장품


커피 안 좋아하는 언니가 박스채 드링킹 하는 임영웅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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