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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02. 2020

오이소박이를 보며 삶의 농도를 맞춰본다


집 근처 마트에서 매일 문자를 보내준다.  문자에 따라온 링크를 클릭하면 마트의 전단지가 뜨면서 '오늘의 특가'라는 대표 상품들을 체크하게 되어있다. 대형마트의 세련됨이나 정교함은 없어도 약간은 어수룩하고 친근한 맛에 자주 이용을 한다.


어제 온 문자에서 내 눈에 띈 건 단연 오이였다. 오이 8개에 1980원이라니 개당 250원이 채 안되는 가격이었다. 오이소박이를 담을 요량으로 장바구니에 클릭해서 집어 넣고 속재료인 부추 반 단을 샀다. 오이와 부추 모두 더해도 4000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오이소박이를 해놓으면 2주일 정도 먹을 수 있으니 값싸고 실용적인 반찬으로는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오이소박이를 한번 했을 때 굉장히 맛있게 된 까닭에 그 후에도 여러번 오이를 사서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처음의 맛을 재현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반찬을 만들 때마다 매번 '같은 반찬, 다른 맛'을 내는 특이한 재주를 지녔다. 맛이 한결같지가 않다. 어쩜 그리도 할 때마다 맛이 들쑥날쑥인지.


그건 레시피대로 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귀찮음이 도져서 그냥 눈대중으로 대충 하기 때문이다. 급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데 요리에 있어서 만큼은 그게 잘 안된다.


오늘도 나는 무식하면서도 용감하게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다. 운에 기대어 작년 어느 한 때 맛있게 되었던 오이소박이가 올해도 불현듯 나타나 주길 기대했다.


재료는 멀쩡, 맛은 특이 내지는 괴상


그런데 다 만들고 나서 먹어보니 음.... 웃음이 났다. 맛있어서 만족하는 웃음이면 좋으련만, 맛이 희한해서 웃음이 나왔다. 웃겨서 나는 웃음. 나는 내가 만든 반찬을 먹으면서 곧잘 실실 웃는다.


오이소박이가 맛있지 않은 이유는 '간'때문이다. 나는 늘 소금으로 간을 하는 일을 두려워 한다. 오이나 열무에 소금을 흩뿌려서 속까지 짭쪼름한 맛이 배도록 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소극적이 되어 버린다. '간'을 세게 해서 너무 짜게 될까봐 경계하다보니 소금의 양이 부족해서 오이도 열무도 늘 살아움직일 듯 팔팔하다. 소금으로 채소들의 숨을 죽이는 일에서 나는 뒤로 물러서기 일쑤다.


친정 엄마가 김치 담는 것을 그렇게 많이 봐왔건만 재료에 소금 간 하는 걸 아직도 잘 못하겠다. 소금을 쥔 손이 늘 어리버리하다. 더 뿌려야 하는 순간 손을 움켜쥐며 소금을 내어놓지 못한다.


나는 짠 맛 보다 싱거운 맛에서 안심을 하는 타입이라는 걸 느낀다. 싱겁다는 건 뭔가 후일을 기대해도 된다는 의미같이 느껴진다. 소금을 조금 더 넣어도 되고 액젓으로 간을 맞춰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니까. 보완해 줄 뭔가가 있다는 든든함이 있는 거다.


그러나 짜다는 것은 도모할 후일이 없다는 뜻 같이 여겨진다. 필요 이상의 소금이 들어 간 음식에서 짠맛을 없애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 재료 깊숙이까지 배어버린 짠맛을 덜어낼 묘수가 무얼까? 모자르면 추가하는 것으로 완성을 향해가면 되는데 넘쳐 나는 건 어떤 식으로 조절해야 할지 아직도 가늠이 안된다.


한 때 슬픈 감정이 넘쳐나서 주체가 안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넘쳐나는 건 부족한 것 보다 일상을 유지하기가 훨씬 어렵다고 말이다. 감정도 행동도 기대도 가치 판단도 그 모든 것들이 과잉 상태일 때 견디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내게 '과잉'이라는 말은 '부족'함 보다는 항상 경계해야할 단어로 보인다. 그런 마음이 '소금 간'을 하는 순간, 소금을 그러쥐고 내어 놓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이젠 시간이 흘렀고 과거는 지나갔고 나는 조금 더 자랐으며 내 슬픔의 농도는 옅어졌다. 그러니 이쯤에서는 힘 있게 소금을 팍팍 뿌리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중년의 내가 농도 조절 못하겠다고 소녀처럼 뒤로 물러서서 "삶은 싱거워도 되는 거잖아요."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니까.


날마다 싱겁게 산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는 인생 아니겠는가. 중간 중간 조금 짜더라도 리드미컬하게 살아보는 것. 인생후반전 다시 용기를 내어 내 삶의 농도를 맞춰가는 중이다.


먹으면 허허 웃게 되는 희한한 오이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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