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너에게.
코로나 이후 집집마다 일상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먹고 자서 곰이 되었다든지,
뒹굴기만 해서 공이 되었다든지.
거의 온전한 '사람' 형상으로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
'곰'이 되었든 '공'이 되었든.
그건 단지 외형상의 변화일 뿐
본질을 뒤져보면 그들은 모두 우리의 아이들이 맞지.
지금은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칩거하느라
'칩거용 변신 모드'가 작동되고 있는 것일 뿐.
그러니 '곰'과 '공'의 형태로 살짝 바뀐 아이들을
'곰'과 '공'으로 착각해서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
그저 옆에 끼고 앉아 있다가
평상시의 '사람'으로 돌아오는지 잘 지켜봐야 해.
우리 집의 일상에도 나름 변화가 생겼다.
너는 사무실에 있는 아빠에게 자주 전화를 하지.
퇴근길 마트에서 1킬로 그램 짜리 딸기 세 박스와
도넛 10개들이 한 박스를 사 오라는
주문을 넣기 위해서야.
1일 1박스 딸기 비우기. 실화임 ㅜㅜ
아빠는 처음에 자기 귀를 의심했대.
딸기 세 박스가 누구네 집 애 이름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딸기로 연명할 게 아닌 이상
(1일 1박스, 사흘이면 끝나는 걸 믿지 못하는 아빠)
무슨 딸기가 그리 필요할까 싶었던 거지.
그래서 확인차 몇 번을 반문해도
너는 정확히 '세 박스'를 사 오라고 요구했다더라.
'두 박스'는 불안하다는 것이 이유였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딸기와 함께 하는 너.
딸기 한 박스를 씻어
커다란 사각 유리 밀폐 용기에 넣어두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초토화된다.
1일 1박스만 해치워주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할 정도로
딸기 앞에서의 너는 용맹스럽지.
그때마다 아빠는 나를 불러서
너의 상태를 고자질하곤 한다.
"자기야, 쟤 또 딸기 공격 들어갔다."
한바탕의 딸기 공격이 끝나면
너는 어김없이 도넛에도 공격을 가한다.
너는 도넛 넣은 박스가 작으면 작다고 뭐라 하고
박스가 길면 리무진 같다고 또 뭐라 한다.
여기서 '뭐라'는 소리는 '좋다'는 뜻이다.
커도 좋고 작아도 좋고
도넛 10개를 어디에 담든 상관없다.
그냥 도넛이기만 하면 된다.
공격에 능한 '공격형 그녀'인 너는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
도넛 10개도 깔끔히 해치운다.
너는 수비라는 걸 할 줄 모른다.
아껴 먹고, 나중에 먹고, 뒷날 먹고...
그런 걸 아예 모른다.
오로지 공격뿐.
임전무퇴.
전투에 임하면 물러서는 법이 없지.
아침에 일어나서 다 해치운 빈 박스를 보면
엄마 마음이 약간 심란해지더라.
도넛 도둑맞은 줄 알았음. 눈 떠보니 다 사라졌음.
아빠는 너의 건강과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
그래서 나더러 신경 쓰고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꾸만 묻는다.
중간에 낀 나는...
솔직히 아빠보다는 네 쪽에 가깝다.
어느덧 나도 너를 따라서
딸기와 도넛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중이거든.
우리 모녀는 자꾸 곰이 되어간다.
공이 되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