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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Jun 13. 2020

누가 그 우산을 공중에 매달았을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수고로움에 대하여


딸 너에게.


송도 트리플 스트리트의 건물 사이 허공엔

우산을 매달아 놓은 줄들이 많아. 

일정 시기가 지나면 다른 색깔들로 교체를 하지만 

우산을 내리는 법은 없단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알록달록 수놓은 많은 우산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이런 광경을 5년 전쯤 

서울의 청계천에서도 본 적이 있었어. 

청계천 모전교 근처 공중에 

어린이 재단 초록우산에서 '1004 데이'를 맞아 

우산을 매달아 놓았었지. 

아마도 우리가 처음으로 본 

'공중(空中) 우산'이었던 것 같아. 

그 후 청계천에는 꽤 오랫동안 

공중에 우산이 매달려 있었어.


그때 그 우산들을 보면서 

'누가 저렇게 설치를 했을까?' 

'공중에 우산을 매다느라 목도 팔도 아팠겠다'

너랑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었지. 


그 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공중에 우산을 설치하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일 거야.


지난달. 집 근처 트리플 스트리트에 갔다가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됐어. 

공중에 우산을 매다는 순간을 딱 만난 거지. 

그제야 퍼뜩 떠올랐단다. 

5년 전 '누가 그 우산을 공중에 매달았을까?'

'힘들지 않았을까?'라고 

궁금해했던 그 생각이 말이야.


트럭과 장비가 동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동안 한 폭의 그림처럼 

우산들이 완벽하게 펼쳐져 있던 광경만을 보다가 

설치 중인 순간을 보니 느낌이 다르더라. 

쉽게 보고 스쳐 지나버렸던 공중의 수많은 우산들은 

트럭과 장비까지 동원되어 

긴 시간의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거든. 

한눈에 보아도 

공중에 매달린 우산을 펼치는 작업은 

꽤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분명했어. 


모든 일이 다 그렇단다.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무언가가 숨어 있어. 

예쁜 우산만 볼 줄 알았지, 

트럭과 장비와 사람의 노고가 동반된다는 건 

신경 쓰지도 못했어. 

가끔씩 의문을 가졌다가도 

드러나는 실제 모습에 매료되어 감탄만 할 뿐  

과정은 소홀히 다뤄지기 일쑤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에 펼쳐지는 

아름답고 신기한 일들의 뒤에는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내고자 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만다. 

결과물이 화려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울수록 

과정에서 애쓴 순수한 노동력과 

노고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지. 


깨끗한 거리, 치워져 있는 쓰레기통, 

청결한 전철 역사와 화장실, 정돈된 건물 내부, 

말끔한 건물 외벽, 가지런한 옥외 간판 등등. 

우리가 이용하는 그 편리하고도 깔끔한 

시설들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 

부지런히 보수, 관리하고 청소했을 

분주한 그 손길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


눈앞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과 

보이지 않는 이면의 수고로움까지 

한 번에 떠올려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다 한번 마음 내킬 때만 공감하는 것 말고, 

짐짓 다 이해하는 척 성의 없는 끄덕임 말고. 

진심으로 순간순간을 느끼며 함께 공명하고 싶다.  


우산이 촤르륵 펼쳐지는 순간. 

우산을 펼치는 기사님과 우산을 보는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했다. 

이 순간을 계기로 현상의 이면, 사물의 반대편, 

사람의 내밀한 속마음까지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아는 우리로 거듭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그런 마음으로  

한참 동안 트리플 스트리트 야외 벤치에 앉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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