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지역 문화 재단의 의뢰로 에세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올 초에는 공동 저자들의 책 출간 과정에 기획자로 참여하는 경험을 했고 최근 경기도의 한 도서관에서 10주에 걸친 에세이 강의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모두 다 내가 의도하거나 계획한 일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계속 생겨났다.
강좌명은 “우.리들의 에세이 산.책” 일명 “우산”으로 정했다. 비가 오거나 햇빛에 눈이 부실 때 우산을 펼쳐 들어 빗방울과 눈부심을 피하듯, 힘든 순간순간 써내려 가는 에세이가 우리 삶의 우산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거라 믿어서였다.
수강생 20명 선착순 마감 이후 대기자가 10여 명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많은 분들이,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니까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더 친근하게 여기는 듯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줌 강의를 위한 아이디와 비번을 받았다. 여태껏 누군가가 열어 준 줌 강의에서 화면을 공유받아 저자 특강 등 강연을 한 적은 있어도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단톡방에 링크 주소를 보내고 줌 강의실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맞이한 적은 없었다. 그 생경한 일을 얼마 전에 처음 해보았다.
20명의 수강생들이 입장 후 사전 공지대로 화면을 모두 켜주셨다. 그런데 수강생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는 걸까?'
헤매고 있을 때 IT 업계 경력 15년 차의 수강생분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덕분에 화면 공유를 정지하면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보면서 출석 체크도 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수강생들 중 두 분께서 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카톡과 채팅창에 메모를 남기셨다.
"어머, 제 목소리가 안 들리세요?"
수업 시작 시간 10시는 다가오는데 두 분의 수강생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난감했다. 그분들께 로그 아웃했다가 다시 접속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제 들려요."
그중 한 분이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머지 한 분만 목소리가 들리면 해결이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하는 수없이 다시 한번만 더 로그아웃을 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채 10시 정각부터 수업을 진행했다. 다른 수강생분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모두 함께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자꾸만 아직 들어오시지 못한 한 분이 마음에 걸렸다.
잠시 후,
참가자 화면 하나가 반짝 켜지면서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마지막까지 들어오시지 못하던 바로 그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주고받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손자 다섯 명을 둔 70대 할머니예요."
"어머나, 세상에. 그런데 줌 강의에 어떻게 참여하실 수 있으셨어요? 로그 아웃해도 계속 안되셨잖아요."
"아는 동네 언니한테 물어봤어요."
"도...동네 언니요?"
"네."
순간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70대의 할머니가 줌 강의에 참여하신 것도 신기한데 그 줌 활용법을 더 연세 드신 동네 언니가 가르쳐 주셨다니. 그 동네 언니는 80대이실까? 그렇다면 나는 7,80대 노년층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줌 강의를 이제야 겨우 열어 보는 건가? 그것도 엄청 헤매면서? 그러나 내 탓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듣고 싶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동네 언니도 모두 대단하세요. 동네 언니가 연세도 많으실 텐데 어쩜 이런 걸 다 아신대요?"
내가 막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바로 돌아온 답변은
"아, 동네 언니가요. 관리사무소에 있는 언니유. 집에 손녀딸이 있으면서 가르쳐줬는데 오늘은 직장 나가서 내가 혼자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게 안돼가지고 지금 관리사무소까지 뛰어갔다 왔어요."
.
.
.
아. 순간 울컥해졌다.
손바닥만 한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난생처음 보는 강사의 수업을 들으시고자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향해 뛰어가셨을 70대 할머니의 분주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우리 엄마의 얼굴도 동시에 떠올랐다.
배움을 향한 마음이 이렇게 귀하고 정성스럽다는 것을 연세 드신 분들의 태도에서 배우며 깨닫게 된다. 70대 할머니 수강생께서는 작년에 이미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 수업을 들으셨고 현재는 '철학 필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계시는 열정 만렙의 소유자였다.
'동네언니에게물어봤어요.'라는말속에는 ‘나는뜨거운열정을지닌사람이에요, 나는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게아닐까?
앞으로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면, 또 낯선 그 무언가에 호기심이 일어날 때면 주저 없이 세상 모든 곳에 흩어져 있는 '동네 언니들'에게 물어볼 예정이다.
(주변의 '동네 언니들', 잘 부탁드립니다!!!!! )
70대 할머니 수강생은 수업 첫날부터 배움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온몸으로 보여 주셨다. 우리들의 에세이 산책은 그렇게 한 발자국 발걸음을 떼었다.
첫 수업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할머니 수강생께서 에세이 수업을 그만두시겠다는 의사를 사서 선생님께 전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깜짝 놀라서 곧바로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열정적이신 분께서 첫 수업 후 그만 두실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든 부분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정리해서 글 쓰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할게요."
"저기. 카페에 글 올리는 것도 쉽지 않고. 단톡방에 자꾸만 카톡이 올라오는데 제때 댓글을 못 다는 것도 신경이 쓰여요."
"!"
카페에 글을 올리는 대신 메일로 보내주시면 되고 카톡은 참여 안 하시면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 전달 사항이 있을 경우 따로 문자를 보내드리겠다고 약속도 드렸다. 절대 불편하거나 부담되는 일 없게 해 드릴 테니 듣고 싶으신 수업에 계속 참여하시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할머니의 대답은
“강사님, 저만 특별히 배려해 주신다고 하면 착오가 나고 그럴 수 있어요. 거기 수강하는 사람들이 다 젊어서 나이 든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수업에 들어가면 참 좋겠네요. 강사님이랑은 다음에 뵐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때 꼭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마음이 커서 10분 가까이 할머니께 말씀드렸지만 설득할 수는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수업에서 혹여 자신이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배려심 끝에 힘들게 내리신 결정이었다. 말씀 중에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해서 계속 권유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 생각했고 할머니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어떤 젊은 사람보다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첫날, 관리사무소까지 뛰어갔다 오신 할머니 수강생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도 여태 껏처럼 몇 줄씩 계속 쓸 거예요.”
할머니는 지금도 글을 쓰고 계실 거다. 모르는 게 있으면 동네 언니를 찾아 집 밖을 나서시는 그 열정으로, 세상 모든 일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오늘도 몇 줄의 글을 또박또박 쓰고 계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