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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Apr 25. 2021

화장실 청소도 다시 할 수 있다는 배우 이정은

비로소 나다운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갑니다

몇 년 전 우연히 틀어놓은 TV에서 황당한 대사를 천연덕스럽고 찰지게 하는 배우를 보았다. 누군가의 명함에 적혀 있는 대표를 뜻하는 CEO를 '씨이오'라고 읽지 않고 '쎄오'라고 읽던 여자. 이제는 명품 조연으로 유명해진 배우 이정은이다.


며칠 전 친구가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내게 톡으로 보내주었다. 패션 매거진에서 촬영을 하고 인터뷰를 한 기사였다.


"이 기사 읽는데 네가 쓴 에세이 읽었을 때랑 느낌이 아주 비슷하더라. 그래서 보내는 거야. 한 번 읽어봐." 

"정말?"


친구가 내 글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녀의 기사를 읽었을 것이다. 나랑 동갑인 데다가 새롭고 희한한 단어 '쎄오'를 능청스럽게 들려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 이정은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처럼 마트 캐셔 일을 다시 할 수도 있고, 화장실 청소도 할 수 있어요. 그때 사람들이 날 보고 웃더라도 '난 괜찮아요'라고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요."


연기에 재능이 없어서 한동안 연출부 활동만 했던 그녀는 마트 캐셔, 판매원, 화장실 청소 등등의 일을 가리지 않으며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들이 작품 활동에 도움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나도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고, 일어난 모든 일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편이다. 그러나 탄탄히 자리 잡아가는 명품 배우가 그 옛날 초라했던 시절로 선뜻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의외다. 남들이 비웃어도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그녀. 도대체 그 자신감의 비결은 무엇일까?


<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유한 사업가도 우울할 수 있고, 성공한 예술가나 장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네가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결론 내리는 게 네 삶이 추구하는 바가 되면 안 돼. 너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건 인생에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재수가 좋거나 나쁘거나 흔들리지 않아. 그는 지혜와 끈기에만 반응을 보이지." 


진실로 선하고 현명한 사람은 살면서 맞이하는 모든 변화를 처지에 맞게 아주 잘 대처해 나간다고 한다. 상황이 나쁘다고 천지가 무너진 것처럼 굴지 않고 반대로 좋다고 해서 오만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처신하지도 않는다. 배우 이정은이 보여주는 태도에서 선하고 현명한 사람, 행복한 사람만이 가진 향기가 느껴진다. 


나 역시 엎드린 채 숨죽였던 긴 시간을 끝내고 일어서 보니 나에 대한 미움을 걷어낸 자리에 나를 사랑할 이유가 한가득 숨어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끄적거리며 쌓아놓기만 했던 글들을 모아 에세이 한 권을 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책 제목도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로 정했다.


내가 좋아지는 어떤 날이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일이 잘되고 잘 풀릴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그냥 안 풀리거나 잘 풀리거나 내 인생을 내 방식대로 살아내는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나이 50이 넘어 이제야 비로소 나다운 삶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 글자씩 꾹꾹 눌러 글을 쓴다. 


"고민과 슬픔이 많은 미련한 나를 싫다고 내쳐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불필요한 과거인 양 내 인생에서 삭제해 버리지도 않을 생각이다. 내 안에서 나온 작디작은 그 무엇이 내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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