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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r 21. 2021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든다는후라이도믿어 볼까?

우리는 커서 뭐가 될까?

올해 초 현빈과 손예진의 열애설로 인해 사람들의 이목을 다시 끌게 된 '사랑의 불시착'. 그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었다.


"후라이 까지 말라!!!"


남한의 재벌 상속녀 손예진이 북한 땅에 불시착해서 자꾸만 '고기'를 찾는다. 삼시 세 끼 중 두 끼는 반드시 고기반찬이 있어야 한다고 하자 북한군 표치수가 황당해하며 한 말이다. 매일 두 끼씩이나 고기를 먹는다는 거짓말로 불온한 선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도 했다. 툭하면 그가 남발하던 '후라이 까지 말라."는 '뻥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와 같은 뜻이다.  


후라이와 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고사성어 중에 허풍스러운 이야기가 꽤 많다. 중국 사람들의 스케일이 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천 년 전, 그 옛날부터였다는 것을 몇몇 고사성어를 보며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는 시선(詩仙)으로 알려진 중국 당나라 때의 천재 시인 이백. 그와 관련된 고사 성어 중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것이 있다.


이백의 원래 이름은 이태백이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태백성(금성)이 품에 쏙 들어오는 꿈을 꾸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백은 천재 시인으로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 곧 시가 되었다고 한다. 1100편이 넘는 시를 남긴 그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시선(詩仙) 이백으로 불렸다.


이백은 젊은 날 자부심이 커서 과거를 치르지 않았다. 자신처럼 똑똑한 사람은 나라에서 미리 알고 찾아올 거라 생각하며 깊은 산속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학문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포기를 선언한다. 그리고 보따리를 꾸려 산에서 내려와 버렸다. 




마침 그때 이백은 바윗돌에 도끼를 갈고 있던 할머니를 만나게 되어 질문을 했다.


"할머니, 뭐 하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몰라서 물어요."

"도끼 갈아서 바늘 만들고 있잖아. 이눔아."

"뭐, 뭐라고요?? 말도 안 돼요."

"왜 말이 안 돼?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 이눔아."


다소 황당무계한 대화라서 믿을 수가 없는데 천하의 천재, 시선 이백은 그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산속으로 컴백한다. 그리고 더 처절하게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늘을 하나 사면 될걸, 왜 아까운 도끼를 갈고 그래요? 그 할머니 너무 멍청한 거 아니에요????"

아이들은 궁금해하며 이렇게 질문한다.


맞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바늘보다 비싼 도끼를 못 쓰게 만들지, 시간까지 하염없이 잡아먹게 만들지, 늙은 할머니 체력 손실도 심하지.... 이런 행동은 여러모로 '어리석음의 끝판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후라이 짙은 이야기 끝에 허허실실 웃게 만드는 반전의 묘미가 참 좋다. 담긴 의미도 좋다. 결국 남들이 다 안된다고 외치는 일이라도 마음 딱 먹은 채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들어 버릴 각오로 달려들면 '못할 것도 없다'라는 뜻이니까. 고사 성어에 담긴 대륙적 기질과 더불어 얽혀 있는 옛이야기까지 함께 들으면 그 재미가 쏠쏠하다.




고사성어 속 할머니의 각오를 따라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하는 일이 내게도 있었으면 했다. 대단한 무엇을 이루겠다는 결심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딱 하나' (두 개 말고 딱 하나만) 정해서 '마부작침 (磨斧作針)'의 자세로 살아보고 싶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뭔가를 끄적댄 지 2년이 되었다. 내용이 말이 되든 되지 않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그런 날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나를 끝 간 데 없는 구덩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간신히 하루에 한 글자씩 쓰면서 깊고 깊은 구덩이 속에서 기어 올라올 수 있었다.


'양질의 글을 쓰는 게 중요하지, 별 내용도 없는 글을 매일 쓰는 게 무슨 소용일까?'의심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양질의 글은 별 내용 없는 글들이라도 꾸준히 쌓이면서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의 경우엔 그랬다.


여전히 부족한 나는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지면만을 채울 뿐이다. 적당한 의무감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텅텅 비어버릴 공간에 쥐어 짜낸 희미한 정성이라도 흩뿌리는 일. 그게 바로 나의 부족한 글쓰기의 전부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일상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작은 의미라도 부여해 나가려 한다.


딸아이가 어릴 적, 내게 묻던 말이 있었다.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야, 너 말이야. 이미 다 큰 나한테 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거니?'라고 묻고 싶은 철딱서니 없는 엄마였지만 차마 그러지는 않았다. 그 질문을 아이한테 말고 나에게 던졌다.


'나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엄마가 되어도 아이를 키우면서 더불어 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어 버릴 마음으로 덤벼든다면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의 꿈을 향해 무럭무럭 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끼가 생각보다 엄청 안 갈린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바늘이 될 때까지 그냥 갈아보려 한다. 


그나저나 표치수가 내 말을 듣고 '후라이까지 말라!!!' 그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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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bdilla_creative, 출처 Unsplash,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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