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한때 정신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매일 읽고 쓰기로 다짐했던 결심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 종종거리다 보니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절실해졌다. 나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남편의 시간을 좀 가져다 쓰기로 결심했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은 내 부탁대로 작년부터 지금까지 매번 마트를 출입하며 장 보기를 도맡아 하고 있다. 퇴근하면서 또는 주말에 부지런히 장을 봐 온 남편도 있는데 나란 사.람.은 내가 하는 일에만 빠져서 살림을 제대로 못했다. 평소에도 못하는데 아주 더 못했다.
남편이 사 온 베이글도 냉동실에 넣는 걸 깜빡 잊고 주방 구석에 그대로 두는 바람에 곰팡이가 생겨 못 먹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 남편이 거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나한테 짜증을 냈었다. 남편의 수고를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 컸다. 특히나 그때는 sns 여러 개에 글을 올릴 때라 정신이 없었다.
블로그나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을 하지 않는 이들은 내게 그런다. 대체 sns가 뭐길래 그걸 한답시고 다른 걸 깜빡깜빡 잊고 사냐고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작년에 세금도 제때 안내서 종종 연체료를 물어야 했다.
혹자는 내가 sns 여러 개에 돌아가며 글을 올리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알고 나한테 뭘 대신 알아봐 달라고 심부름도 시킨다.ㅜㅜ 물건 가격 비교. 맛집 찾기. 여행 코스 선택 등등을 왜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다.
나는 책 원고 쓰기와 블로그, 브런치에 글 올릴 시간을 확보하느라 남편에게 장보기 심부름을 시키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sns에서 한가롭게 노닥거리고 논다고 생각하며 별별 부탁을 다 한다.
"저는요. 노는 거 아니거든요. 저도 나름 엄청 바쁘거든요. 그리고 블로그 매일 쓰기는 한가해서 노닥 거리는 게 아니라 제 나름의 글쓰기이고 생활 습관이고 자기 계발이거든요!"
워낙에 살림에 관심이 적은 나는 요즘도 두서없이 띄엄띄엄 집안일을 돌본다. 말이 돌봄이지 방치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세탁만큼은 미룰 수 없어서 제때 한다. 남편의 셔츠를 다림질까지 다 해놓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상하게도 매번 양말은 짝이 맞지 않고 손수건은 자취를 감춘다. 발이 달렸는지 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얼마 전 아침, 양말 한 짝과 손수건을 찾다 찾다 포기한 남편은 나를 보더니 "그 많던 양말과 손수건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라며 물었다.
"그러게, 참 귀신 곡할 노릇이네. 대체 누가 집어갔을까????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가지고 가면 되겠다."
나는 옷장 한구석에 끼여 있던 쭈글쭈글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손수건을 살짝 뒤집어 개켜서 남편에게 건넸다.
"아예 내가 양말을 그냥 1000 켤레 살게. 손수건도 1000장 사고. 평생 빨지 말고 새 걸 뜯어서 쓰지 뭐."
남편이 외쳤다.
"ㅋㅋㅋㅋㅋㅋ"
웃으면 안 되는 타임인데 너무 웃겨서 계속 큭큭거렸다.
"내가 오늘 은행 가서 대출을 좀 받아 올게. 양말이랑 손수건 1000 장씩 사는 용도로.... 그 용도로 은행에서 대출을 해줄지 모르겠지만."ㆍ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는 출근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좀 많이 유치해서 남편의 이런 황당 유머를 좋아한다. 남편도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 줄 알고 각종 농담을 던져주곤 한다.
남편은 피부가 예민해서 이런 신생아용 면손수건을 쓴다.
작년 이맘때쯤. 남편이 양말과 손수건을 100장씩 사서 100일간 빨래를 하지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양말과 손수건 실종 사태를 맞이했을 때였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나는 미묘한 차이일지라도 양말의 색깔과 모양이 다 다른 걸 산다. 그러니 한 짝이 없어지면 나머지 한 짝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서 깨달은 바는 양말만큼은 같은 모양, 같은 색깔로 선택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양말은 한 짝씩 잘 도망 다닌다.
다양한 것도 좋지만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면을 먼저 고려해야 할 때도 있다. 내 고집, 내 취향을 주장하려면 그만큼 정리나 관리가 잘 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양말 한 짝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러나 완벽하게 물건들을 관리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취향은 조금 내려놓고 집안을 굴러 다니는 양말들을 부지런히 모아 볼 일이다. 남은 한 짝들끼리 짝을 맞춰 하나의 세트로 만들어 신고 다니는 방법도 고려해 봐야 할 때이다.
나도 정신을 차린다고 차렸지만... 얼마 전처럼 양말과 손수건이 불시에 사라지는 때가 종종 있기도 하다. 그러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작정하고 딴지를 건다. 이제 개수가 늘어나 1000장이다.
그 후로 나는 양말과 손수건을 짝 맞춰 반듯하게 개어 놓고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부릅뜨고 지키는 중이다. 대출받아 양말과 손수건 산다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또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얼마 전엔 내 고집과 취향을 내려놓고 똑같은 양말로 10켤레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