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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y 23. 2021

불편한 카페에서는 궁리하게 되더라

편하지 않을 때 얻게 되는 것도 있다.

철 지난 옷들을 세탁해서 정리하다가 니트 소매의 올이 터져 나간 것을 발견했다. 올이 터져 나간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더 조심했어야 했나?'


몇 달 전 폭풍 검색에 나선 남편이 야생화 카페에 가보자며 채근을 했다. 주말 오후, 카페 주변의 야생화 구경까지 할 수 있다니 기분 전환 코스로는 괜찮아 보여서 따라나섰다.


실내에도 군데군데 야생화 장식을 해놓은 덕분에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차를 마실 수 있겠다며 들뜨기도 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햇빛이 잘 드는 창가 근처였다. 


햇볕 좋은 멋진 창가 자리



묵직한 나무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오후 한때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주문한 커피와 머핀을 담은 쟁반을 들고 와서 내 앞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기우뚱.....


멋지게만 보였던 테이블은 별다른 가공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나무의 결 그대로를 살려 놓은 탓에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그 거친 테이블 위에 쟁반을 놓았더니 어쩔 수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커피를 담은 쟁반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수평을 이루지 않는 쟁반 하나에도 내 감정은 묘하게 흔들렸다. 


"아고고, 커피 쏟아지겠네."


쟁반을 이리저리 옮겨 보아도 나무 테이블 위에서 완벽한 수평을 이룰 위치를 찾기는 힘들었다. 테이블 전체의 굴곡이 심했다. 


'얼핏 볼 때는 멋지게만 보였는데 생각보다 불편하군.'


커피 잔을 들어서 그나마 평평한 쪽으로 이리저리 옮겨 보았다. 매끈한 테이블이 있는 카페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커피 잔 제자리 찾기' 작전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 사이 테이블을 유심히 살피면서 옹이 진 부분, 움푹 팬 부분, 거칠게 드러난 부분까지 손끝으로 샅샅이 만져보았다. 나뭇결 사이사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일상의 먼지들이 파묻혀 있었다. 


'이 먼지들을 전부 파서 꺼내야 하나?'


먼지들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차를 마시려던 순간. 

.

.

.

카페의 움푹 팬 테이블, 커피 쏟기 좋은 지점
보는 순간 저절로 공손해지는 거북의 등가죽 같은 테이블


테이블 모서리의 거친 나무 표면에 입고 있던 니트 소매가 걸리더니 올이 '찌익'하고 늘어났다.


'이런! 테이블! 너 뭐니?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화내기 일보 직전에 살펴본 모서리는 거의 천년 묵은 거북의 등가죽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일어서서 공손히 두 손 모으고 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오래된 테이블한테 막 덤비기엔 내 나이가 너무 하찮아 보였지만 그래도 짜증은 났다. 


'멀쩡한 옷을 꼭 이렇게 해야만 했니?'


구시렁대다 보니 커피 맛도 '똑'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무지막지한 테이블이 꼭 카페 안에 있어야 했는지 주인장한테 따지고 싶어 졌다.


'커피 마시러 왔다가 니트 소매의 올이 터지면 그건 제 탓인가요?' 

묻고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게 '내 탓'이라는 걸 금세 알아챘기 때문이다. 테이블 옆 벽면에 '올뜯김 주의'를 알리는 안내 문구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나중에 발견한 내 탓이 맞았다. 


<커피잔과 거북이 등가죽 테이블이 있는 풍경>... 책 제목 같다.


볕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편하게 마시려던 나에게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테이블은 생각지도 못한 미션을 주었다. 

'커피를 쏟지 않을 수평 위치 찾기와 니트 올뜯김 주의하기'


카페에서 내 돈 주고 내가 산 커피를 마시면서도 필사적으로 테이블 위의 편안한 지점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웃겼다. 커피 마시다 말고 불편함을 벗어나 보려고 궁리를 거듭해 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이것도 다시 못해 볼 새로운 경험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편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 편하지 않았기에 이리저리 떠올려 본 생각들.... 불편한 상황은 내게 더 많이 살펴보고 더 많이 궁리하게끔 만들었다. 


언제나 편한 것을 좋아하고 불편한 것은 꺼려했으므로 편안하고 안락한 것만을 찾아 많은 값을 치르며 살아왔다. 많은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돈에 민감해야 했다. 넉넉한 자본이 통장 가득 들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게 하려면 관심을 '돈 버는 일'에 늘 고정시켜 놓아야 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나는 '돈 버는 일' 보다는 '돈 적게 쓰거나 안 쓰는 일'에 관심 갖는 것이 보다 더 쉬웠다. 욕망을 줄이기로 했다. 안락함을 찾아 헤매는 데에 드는 시간도 덜 쓰기로 했다. 


그러려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때론 즐기거나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즐겁고 의미 있어지면 불편함은 더 이상 불편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천년 거북의 등가죽 같은 테이블 위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 커피잔을 무수히 옮겼던 나는 마지막까지 한 방울의 커피도 쏟지 않고 다 마셨다.  


미션 완수!!!


덕분에 테이블도 유심히 관찰하며 나무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이가 떠올랐고 그 위에 글을 끄적대는 삶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이만하면 불편이 불편으로만 끝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대신 이미 풀려 버린 소매의 올 따윈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니트라는 게 뭐, 올도 좀 풀리고 어디 긁혀서 보풀도 좀 일어나는 맛으로 입는 거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이 쓰린 건... 위산 과다 탓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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