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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20. 2019

'바람풍(風)'과 사귈 수 있었을까?

우리들의 연애 이야기


남자는 얼굴이 다야!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친구 중 한 명은 소개팅할 때 늘 남자의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것저것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키 크고 잘생기면 된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소개팅에 나가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제나 자신의 이상형과 맞지 않는 이상하게? 생긴 사람만 나온다고 툴툴댔습니다.


몇 번 듣다 보니 친구가 좀 한심스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연애를 못하지.' 속으로 험담도 했으니까요.

이 친구가 고등학교 연합 동문회에 나가게 됐는데요. 신입생 환영파티에서 이상형을 딱 만나게 됩니다. 근데 그 이상형이 자신의 동기나 선배였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 후배였던 거예요. 그것도 무려 네 살이나 어린 후배.


지금이야 연상연하 커플이 아주 많지만요. 한 20여 년 전만 해도 네 살씩 차이 나는 커플은 없었거든요. 있었어도 드러내 놓고 다니지 않아서 눈에 안 띄었을 겁니다. 


그 남자 후배의 이름 어딘가에 '풍'자가 들어 있었어요. 친구는 그 후배가 자기 애인도 아닌데... '설마 바람 풍(風)은 아니겠지?' 하면서 걱정을 하더라고요. 기가 찼지만 어쨌든 그 말을 듣고 나서 친구와 저 사이에 그 남자 후배의 암호명은 '바람풍(風)'이 되었어요.


그 '바람풍'은 선배 누나인 제 친구의 마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눈부신 외모를 빛내며 돌아다녔습니다. 딱 봐도 누구나 좋아할만했어요. 친구한테 세뇌를 당했는지 저도 자꾸 눈길이 가더군요. 


친구는 평소 집요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열심히만 노력하면 모든 일은 다 된다는 신조로 사는 사람이었어요. 잘하면 '바람풍'과의 연애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저한테 연애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바람풍하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그럼 누구??? '


세상에나. 친구의 애인 매뉴얼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사람과 사귀고 있더라고요. 저의 황당한 표정을 눈치챈 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야, 남자 얼굴로만 판단하는 거 아니다."


그때 저는 친구의 행동이 참 우습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른 거 안 보고 남자의 인물만 볼 거라는, 책임지지도 못할 말은 왜 했던 거냐고 비아냥대기도 했죠.  




인간은 겸손하지 못할 때
실수하고 실패한다



그 뒤에 저한테도 어떤 사건이 생겼습니다. 교양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한 남자가 쫓아온 거예요. 다짜고짜 제가 마음에 든다고 사귀면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까무러칠뻔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외모가 너무나도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친구 따라 이상형을 '바람풍(風)'타입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걸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 남자가 얘기를 하는데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같이 마주 보고 서서 한마디도 나눌 생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 남자랑 얘기하고 있는 저를 쳐다보기라도 할까 봐 싫었어요. 막 쫓아오며 말하던 그 남자에게 화도 냈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훌쩍 시간이 흘렀는데요. 저는 그 일이 가끔씩 생각나요. 저는 그때 왜 그렇게도 교만했던 걸까요? 제가 뭐라고 감히 그런 행동을 했던 걸까요? 참 많이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살면서 이런저런 힘든 일을 겪다 보면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희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삶의 요소요소에서 무릎이 몇 번씩 꺾이고 나면 긴 말 하지 않아도 저절로 꿇어앉게 되고 고개 조아리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요.


저에게 시련이라는 중간 제어 장치가 없었다면요. 아마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저만의 편견을 거두어 내지 못했을 겁니다. 누군가를 외모나 차림새. 능력이나 학벌. 재산이나 배경으로 판단하는 다른 사람들 속에 여전히 남아서 헛되고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늦게나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시련의 시간들이 고맙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존 헤네시가 들려주는 핵심 자질 제1 덕목.
그것은 바로 겸손


존 헤네시의 저서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는 참된 어른이자 리더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10가지 핵심 자질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존 헤네시는 16년간 스탠퍼드대학교의 총장을 지냈고 현재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입니다. 그는 총장 은퇴 후 나이키의 필 나이트 회장과 나이트-헤네시 장학 재단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인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그렇게 명예와 부를 다 가진 존 헤네시는 10가지 핵심 자질 중 첫 번째로 '겸손'을 강조해요. '당신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을 존 헤네시 자신에게까지 적용합니다. 총장 자리에 있었을 때조차 자신의 역할과 활동은 엔진이 아니라 하나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실력과 품성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자존심이 아닌 겸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오만은 자신의 강점만 보면서 자신의 약점과 남들의 강점은 무시하게 만들어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반면에 겸손은 우리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줌으로써 보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31쪽





삶의 많은 부분들이 '겸손'하지 못해서 깨지고 파괴되는 것을 봅니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함'이 부족한 자리에 '자만심'이 들어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서 존 헤네시는 '겸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체득해서 숙달되는 것이고 명확한 방향성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공적을 자기 입으로 자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알리도록 놔두는 것이라고 해요. 어려움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각도에서 자신의 실패를 분석하는 것이 겸손한 리더의 자세입니다.


실패했다고 죄책감이나 좌절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법을 평생에 거쳐 배워 나가는 것. 겸손한 자세로 하루하루 산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비결이자 성장에 다가서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아직도 사람을 대할 때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한다면, 남 앞에 나를 드러내고 내세우기를 좋아한다면, 실수를 배움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면, 성장의 기회 속에서 도전하지 못하고 자꾸 물러서기만 한다면  우리는 덜 겸손한 것이고 아직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 됩니다.





지금은 비록 꼬마와 진정한 어른 사이의 꼬마 어른으로 머물지라도 결국 우리들의 지향점은 한 곳이 될 것입니다. 성숙한 어른, 성장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가다 멈추고, 가다 쓰러지는 날들도 많겠지만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자세. 그게 겸손 아닐까요? 지난날 겉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해서 상처 준 저는 반성과 후회와 용서를 비는 시간을 거쳐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섣불리 한 번에 판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떠올리며 오늘도 겸손의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도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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