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Oct 21. 2019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스타

결식아동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홍대 근처 파스타 가게 중 '진짜파스타'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오인태 사장님의 선행 덕분이라고 해요. 몇 달 전 학생들에게 무료 파스타를 제공하겠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고 하네요. 그 후 손님들의 자발적 홍보와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인태 사장님은 어느 날 구청에 갔다가 '꿈나무 카드'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게 매출이 떨어지던 시점이라 해결 방안으로 '꿈나무 카드 사업' 신청을 해보려고 했는데요. 그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결국 포기해 버리고 말죠.


'꿈나무 카드'란 서울시 아동 급식 카드를 말합니다. 결식의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에게 제휴 식당과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 카드를 지원하는 사업이에요. 


학교 급식에 준하는 식사를 결식 위험 아동과 청소년에게 지원하겠다는 꿈나무 카드 사업은 2009년부터 시행이 되었습니다. 시행 당시의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시행 과정 중에 문제점이 드러났다는데도 거의 10년 넘는 동안 그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나 봅니다.


일단 한 끼 지원 금액이 5,000원으로 현재 물가 수준을 감안할 때 부족하다는 거죠. 5,000원짜리 밥 한 그릇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대부분 7-8,000원 정도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대 5,000원 내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면 편의점으로 가야만 합니다. 지속적인 편의점 식사는 성장기 아동, 청소년들의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꿈나무 카드 이용자의 72%가 한 끼 지원금액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실정이에요.


또 '진짜파스트' 오인태 사장님도 느꼈다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상의 문제가 있지요. 그러다 보니 꿈나무카드 가맹점의 77%가 일반 식당이 아니라 편의점입니다. 어쩌다 가끔씩 있는 가맹점 식당들도 하나같이 거리가 멉니다. 도보 30분 이상 걸리는 곳은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비용은 누가 따로 주나요? 안 줍니다.


정책을 만들 때는 철저히 그 정책을 이용할 대상의 입장과 편의에서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참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사실 꿈나무카드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꿈나무 카드'를 한 번도 사용해 본적 없는 사람, 앞으로도 사용할 일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러니 사용자의 마음이나 불편을 완벽하게 알 수가 없는 거죠.


이렇게 허술한 '꿈나무 카드' 사업이 지속되는 10년 동안 한 끼 식사 대금은 딱 1,500원이 올랐더군요. 동화 <내 친구는 외계인> 속의 단편 '공짜 뷔페'에는 '꿈나무 카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꿈나무 카드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참 가혹하죠.



2010년 당시 무료급식 카드인 꿈나무 카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한 끼 식사 금액 3,500원에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파스타' 사장님은 복잡한 꿈나무 카드 사업을 신청하는 대신 '꿈나무 카드'를 가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한 끼 식사 금액 5,000원에 주눅 들지 말고 '진짜파스타'내의 어떤 음식도 당당하게 주문해서 공짜로 먹고 가라는 안내 문구를 붙이게 되죠.




이 일이 있고 나서일까요? 서울시에서 10년 넘도록 요지부동이던 정책을 약간 손보는 모양입니다. 


먼저 카드의 모양이 개선이 된다고 하는데요. 이전에는 카드에 '꿈나무 카드'라고 찍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무료 급식 카드'로 인식하게끔 했나 보더군요. (이런 배려 없음 정말 슬픕니다ㅜㅜ) 일괄적으로 은행 체크카드처럼 만들어서 타인이 '무료 급식 카드'라는 걸 알 수 없도록 한다는 거죠. 늦었지만 환영합니다. 귀중한 밥 한 끼만큼 아동, 청소년의 여린 마음도 마땅히 보호해 주어야지요. 


일반 음식점들의 '꿈나무 사업' 신청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별도 단말기와 높은 수수료율도 범용 단말기 사용과 수수료 인하 등의 방침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다양한 가게에서 사업 신청을 하여서 꿈나무 카드 이용자들이 편의점에서만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울시의 '꿈나무 카드' 사업 개선책에도 미진한 요소들이 많은가 봅니다. 편의점에서 90% 이상 꿈나무 카드 사용하는 아동, 청소년은 이상 사용 패턴자로 규정하겠다고 하고요. QR코드 도입으로 카드 잔액을 확인하도록 하겠다는데 기존의 영수증 하단에 잔액이 나오는 방식이 훨씬 편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책을 바꿀 때에는 그 정책을 사용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괄적으로 수렴하고 개선방안도 그분들에게서부터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주목을 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도, 시대도 바뀌어 가는데 기존의 정책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반문하게 돼요.


이름조차 '꿈나무 카드'라면서요. 꿈과 희망을 품고 자라나는 '꿈나무'라고 이름은 지어 부르면서 그 꿈나무들이 마음의 상처 입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하는 정책들. 바뀌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진짜파스타' 사장님의 선행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서울시의 '꿈나무 카드' 사업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일반 시민들의 선행은 너무나도 훌륭하지요. 그러나 정책의 모자람을 시민들의 선행으로만 채워 나갈 수는 없습니다. 탁상공론에 빠져서 대충 만들고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는 폐기되어야 할 정책 만드는 시간들을 아껴서 제대로 된 정책들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으려면 사회 구석구석 불편하거나 부당한 상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개선되는 방향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바뀌는 것들도 있겠지요. 작은 관심이 어떤 큰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해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진심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바랍니다.







이전 04화 '바람풍(風)'과 사귈 수 있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