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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Oct 25. 2019

낭떠러지 말고 좌회전

옵션 B. 회복탄력성으로 나를 구원하다


벼랑 끝까지 직진만 하실 건가요?


저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합니다. 특히나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의 안내까지 듣는 걸 어려워해요. 예전의 내비게이션은 요즘 것 보다 가늠하기가 더 힘들었어요. 거리 감각도 없는 저는 '전방 800미터 앞에서 좌회전'이라고 하면 800미터가 얼마만큼인지도 몰라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좌회전 신호에서 매번 핸들을 돌리곤 했지요.


딸아이 어릴 때 병원에 들렀다가 간단하게 점심 한 끼를 먹으려고 칼국수집을 찾아 운전을 한 적이 있어요. 최종 목적지에 분명 가게 이름을 설정해 놓았는데도 잘 못 찾겠더군요.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헤맸습니다. 길치인 저는 그럴 때마다 차를 도로 위에 버려두고 버스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운전 부적응자의 현실 도피 심정이었죠.


적당한 곳에서 좌회전을 못하면 계속 직진을 해야 돼요. 그날 계속 직진만 하다가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뒷좌석에 앉은 어린 딸아이 데리고 자동차 기름 떨어질 때까지 달려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눈물도 났어요.




좌회전으로
뜻밖의 행복을 발견하기도 해요.



죽을힘을 다해 가까스로 핸들을 왼쪽으로 꺾고 주행하는데 근처에 '아웃백'이 보였습니다. 구세주 같았어요. 헤매고 길 잃고 무서워 울다가 결국 주차장이 넓은 아웃백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딸아이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고요. 입맛 없는 저는 대충 거들었습니다. 저녁때 남편이 저희를 데리러 아웃백으로 와서 집으로 귀환할 수 있었어요. 다 추억입니다.


그날 저는 원래 계획이었던 '칼국수 먹기'를 수행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직진의 끝에서 결국 제 힘으로(이렇게 말하기 참 민망합니다만) 좌회전을 해서 '파스타'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아웃백에서의 식사를 아이가 더 좋아했었고요. 행복한 결말이어서인지 그날의 사건은 유쾌한 해프닝으로 기억됩니다.  


만약 불안한 상태에서 계속 직진을 했더라면 접촉 사고 같은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고요. 두고두고 제 발목을 붙잡을 트라우마로 남아 운전 자체를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좌회전했던 그 옛날의 저를 칭찬합니다. 쿨럭 (이래서 운전이 전혀 늘지 않습니다...)




회복탄력성으로 선택한
옵션 B.



셰릴 샌드버그는 그녀의 저서 <옵션 B>에서 고난과 시련이 생겼을 때 맞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자이자 차세대 미국 대선 후보로도 손꼽힌다는 셰릴 샌드버그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합니다. 끝없이 나락에 빠져서 삶의 의미도 희망도 다 잃고 스스로를 책망하던 그녀는 결단을 내리게 되죠. 여태까지 살아오고 예정되어 있던 옵션 A를 버리고 차선책인 옵션 B를 선택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시련이나 상실을 이겨내는 긍정의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역경이나 좌절, 정신적 충격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모두 다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의 노력 유무와 상관없이 어려운 일들은 늘 생기기 마련이므로 내일의 변화를 위한다면 오늘 우리는 필수적으로 회복탄력성을 키워내야만 합니다.


이런 회복탄력성을 저해하는 요소로는 모든 것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 내 삶이 송두리째 망가졌다는 생각, 이 불행이 끝까지 지속될 거라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한 우리는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추슬러서 회복해야만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그 마음이 잘 추어올려지지 않는다면 어떤 기약도 할 수가 없지요.




때로는 옵션 A보다 옵션 B가
나을 수도 있어요.



헬렌 켈러가 말했던 '행복의 문이 닫힐 때, 다른 쪽 문이 열린다'를 기억하면서 옵션 A가 닫히면 재빨리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적당한 옵션 B의 삶을 살아가도록 애써보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지난 세월을 소급해서 과거에서만 살 수는 없으니까요. 과거의 실수에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적용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여러 선택지 중에 사라져 버린 A를 그리워하다가 B까지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옵션 B라도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을 다행이라 여긴다면 그 순간 회복탄력성이 증가하지 않을까요?


자주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며 기억하고, 습관과 운동으로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자신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사는 일. 이것만큼 좋은 일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의 가능성은 옵션 A나 옵션 B나 옵션 C 등의 상황에 있지 않아요. 오로지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삶이 던진 돌에 맞으면 부상을 당하고 그때 입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결의를 단단히 굳히고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옵션 B> 110쪽



살다 보면 세상이 온통 작당하고 나만을 향해 저주를 쏟아붓는 건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 놓일 때도 있어요. 시련 앞에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 나약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느 날 벼랑의 끝까지 내몰려서 떨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모두가 체념해 버릴 때. 남들도 나를 못 믿고 나조차도 나를 못 믿는 순간. 직진밖에 길이 없어 보이는 그 순간에 말이죠.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버리는 건 어떨까요? 좌회전한 그곳에 있던 뜻밖의 옵션 B가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가지 않은 길은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 내면 되는 길이고요. 떨어져 내릴 뻔한 길, 가려는 마음을 포기해 버린 길에 대한 미련 따윈 날려버리는 게 우리의 정신 건강에도 이로울 듯합니다. 


왜냐고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옵션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옵션 B.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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