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먼저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리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재미난 이야기나 뜻밖의 행동으로 우리를 웃게 만든 모습만 떠오른다.
요즘 나는 몇 문장씩 논어를 읽고 있는데 그때마다 특히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와, 이건 우리 아버지를 두고 하신 말씀이네.’
고개 끄덕이게 하는 구절들을 만날 때면 무척이나 반갑다.
논어에서 말하는 내용을 떠올려 보면서 살아생전 아버지의 행동들을 연결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논어를 한 장 두 장 계속 읽어 볼수록 공자가 말하는 인(仁), 공자의 관점에 알맞은 인(仁)한 사람을 찾기는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仁)이란 사람들을 사랑하며,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을 먼저 세워 주고 자기가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남이 먼저 이루도록 돕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해 나가며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통해 안정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공자가 꿈꾸는 사회였다.
인(仁)은 공자가 최고의 덕목으로 언급했지만 제자 안연이나, 요임금, 순임금 등 전설적인 성인을 제외한 누구도 인(仁)의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仁)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낄 즈음, 아버지의 메모장에서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어떤 사람이길래 아버지가 따로 메모해 놓았는지 궁금해졌다. 아버지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빵 한 덩어리로 일주일을 버티라고요?"
"말도 안 돼요."
"빵 더 주세요."
가난한 집안 탓에 빵 한 덩어리로 일주일을 버텨야 했던 열한 살의 마이클 패러데이는 빵을 더 달라고 떼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어차피 빵을 더 받을 수 없다면 어떻게 먹을 건지 생각해야 한다.'
그는 고민 끝에 빵 한 덩어리를 열네 등분으로 똑같이 나누고 하루에 두 조각씩 시간 간격을 두고 먹었다. 한꺼번에 다 먹고 나서 나머지 6일을 굶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손 내미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작은 빵 조각 하나가 한 끼 식사량으로 만족스러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덩어리의 빵일지라도, 열네 등분한 작은 조각일지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궁리해 내고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며 상상력을 키워 나갔다.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그는 겨우 읽고 쓸 줄만 알았을 뿐인데 열세 살 무렵부터 제본소 견습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본되어 나오는 무수히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한 번 읽고 만 것이 아니라 알게 된 모든 내용은 노트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그의 성실함에 감동받은 손님은 영국 왕립 연구소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 티켓을 선물로 주었고 그 강연을 보고 온 날, 패러데이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강연 당시의 내용과 감동을 노트에 적어 제본을 한 다음 패러데이는 손 편지와 함께 험프리 데이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냈기 때문이다. 험프리 데이비와 면담을 하고 몇 달이 지난 후, 우연한 기회에 그의 조수로서 활동을 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왕립 연구소 조수 자리에 결원이 생기자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의 추천을 받게 되었다. 특유의 근면 성실함과 끈기로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모든 천재에게는 시기와 질투도 따르는 법. 그의 스승이었던 험프리 데이비는 조수이자 제자인 패러데이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일부러 인정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왕립 연구소 정회원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반대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말년에는 험프리 데이비가 패러데이의 천재성과 업적, 그의 순수한 진심을 모두 인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변변하게 배운 것 하나 없이 유수의 학자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갔을 패러데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된다.
역사상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로 불리며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가 된 마이클 패러데이. 그는 자기장을 전기로 변환시킨 '전자기학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게 아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무수한 존경을 받은 이유는 자신의 연구로 인해 엄청난 부를 가질 수 있는 특허권 제의조차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 개발 참여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왕립 연구소 회장직을 거부했으며 사후에 귀족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치도 거절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절하는 대신 '배우지 못해 꿈꿀 수 없는 아이들이 과학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제안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오로지 적은 돈으로 근근이 살면서 과학을 위해 헌신하고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위로하며 강연을 했다.
공자는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오는 영윤에게는 충성스럽다고 하고 최자에게는 청렴하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바로 충성이고, 탐욕 없이 높고 맑은 성품과 행실은 청렴을 뜻한다. 충성스럽고 청렴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인하다 논하지 않았으니 공자에게 인(仁)한 사람으로 평가받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늠이 된다.
그러나 공자도 평생을 과학에만 전념하며 국민을 생각한 충성과 끝까지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던 청렴의 상징인 마이클 패러데이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가 곧 인(仁)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메모장에 남겨 뒤늦게라도 내가 알 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