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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Mar 03. 2020

고사리나물, 사연을 알면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 기일마다 제사상을 물리고 나면 가족들은 비빔밥을 먹는다. 제사상에 올린 여러 가지 나물들을 보기 좋게 커다란 접시에 나누어 담는다. 제사상에는 보통 삼색 나물을 올린다. 하지만 살아생전 나물 반찬을 좋아해서 비빔밥을 자주 즐겼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리는 각종 나물을 다 준비한다.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콩나물, 무나물, 취나물, 숙주나물 등등. 생각나는 나물은 다 하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녁 메뉴는 항상 비빔밥이 된다. 커다란 그릇에 뜨끈한 밥을 담고 그 위에 각양각색 나물을 소복이 쌓는다. 취향껏 고추장 양을 조절해 가면서 쓱쓱 싹싹 비비다가 탕국 두어 숟가락 적당히 끼얹고 마지막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비빔밥이 완성된다.


어렸을 적에 나는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싫어했다. 이유는 단 하나. 고사리가 싫어서였다. 고사리는 색깔도 모양도 참 이상해 보였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치고는 색깔이 영 탐탁지 않았다. 어린 나는 갈색 또는 똥색으로 불리는 나물을 덥석덥석 집어먹을 정도로 비위가 강하질 못했다. 


씹는 질감은 또 어떠한가. 단단한 나뭇가지를 살살 잡아 뜯어 놓은 듯한 외관과는 정반대의 느낌이 물씬 났다. 뜻밖의 물컹거림을 입안에서 맞닥뜨리는 순간. 도로 뱉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작은 언니는 고사리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야, 이걸 왜 못 먹어?"

"어떻게 이런 걸 먹을 수 있어?"

"없어서 못 먹지."

"언니나 많이 먹어."

"고사리가 왜 고사리인 줄 알아?"

"몰라."

"고소해서 고사리야."


고사리가 한없이 고소하다는 언니는 예나 지금이나 비빔밥이라면 몇 날 며칠을 먹어도 질려하지 않는다.
 그 옛날 아버지는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보며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가르쳐주었다. 
 

"나물이 어떻게 소고기예요?"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물었다.

"산에서 나는 고사리가 소고기만큼이나 영양가가 높다는 거지. 각종 영양분이 다 들어 있으니까."
 

당시에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사리를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의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나중에야 비로소 고사리가 전복과 함께 조선시대 왕에게 올려지는 최고의 진상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고사리가 없으면 아예 제사상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더 흘러서 내가 그렇게 우습게 알고 무시해 왔던 고사리에 얽힌 중국 고사 한 편을 아버지에게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왕이 되지 않겠다고 사양하던 형제, 백이와 숙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둘은 중국 은나라의 왕자였으나 서로에게 왕위를 양보하다가 결국 다른 형제에게 왕좌를 내어 주고 나라를 떠난다. 당시 너그럽고 인자하기로 소문난 주나라의 문왕을 찾아가 자신들을 의탁하려 했으나 그가 이미 죽어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후,  주나라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위패를 수레에 실은 채 은나라를 침략하러 떠나려 하자 백이와 숙제는 그의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하러 떠나는 것이 효(孝)인가?"

"또 주나라에게는 군주의 나라 격인 은나라를 공격하는 것인 인(仁)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주나라의 무왕은 백이와 숙제의 간언을 듣지 않고 은나라를 공격하여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의 백성이 될 바엔 산에서 살겠다며 속세의 연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산속에서 고사리로 근근이 배를 채우며 살다가 죽는다. 


후세에도 백이와 숙제는 효와 인의 소중함을 되새길 때마다 끊임없이 회자되는 인물이다. 공자도 '백이와 숙제는 남의 옛 잘못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들을 원망하는 사람도 드물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의 충절을 높이 평가했다. 단지 식성과 취향의 문제로만 바라봤던 고사리는 그 옛날 중국의 형제 성인이었던 백이와 숙제의 연명을 위해서 꼭 필요한 귀한 먹거리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고사리도 조금씩 먹게 되었고 비빔밥도 곧잘 먹는다. 가끔씩 무조건 '싫은 것'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무조건'이라는 말이 너무 생각 없고 개념 없이 들려서 싫은 것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러나 억지로 만든 이유는 별다른 설득력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순간에 '싫은 것'들에 얽힌 예상치 못한 사연을 접하게 되면 굳어 버렸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제 와서 못 먹던 고사리를 먹는 것은 내 입맛이 변했다기보다는 그 고사리에 얽힌 여러 가지 추억들과 옛이야기들이 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렸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꽉 닫아 걸 필요도 없지만 만약 닫혔다 해도 크게 걱정할 이유도 없을 듯하다. 나도, 내 마음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변해 간다는 걸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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