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Nov 27. 2019

삶의 사계(四計)와 비발디의 사계(四季)


작년 말쯤 아버지의 수첩 한구석에서 '사계'(四計)라는 글자를 보았다. 당연히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四季)를 뜻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한자가 달랐다.


'사계'(四計)란 '삶에서의 네 가지 계획’을 뜻한다.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고 한 집안의 계획은 화목함에 있다는 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에 참 적절한 단어'를 한해의 끝에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새벽을 깨우며 바지런하게 움직이면 하루가 알찰 것이고 봄부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의 큰 그림을 서둘러 그려 놓는다면 1년이 편안할 것이다. 부와 명예는 산처럼 쌓였다가도 어느 한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으나 한 개인의 인생 전반에 쌓인 근면 성실함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손끝의 지문처럼 삶의 끝에 새겨진 성실함은 누가 빼앗는다고 해서 뺏길 유형(有形)의 자산이 아니다. 아무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개개인의 독특하고도 고유한 성실함은 각자가 누릴 무형(無形)의 자산이자 최고의 영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온 가족이 화목할 때 그 가정의 평생 계획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 그것이 '사계'(四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계획은 바로 이렇게 세우는 거였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사계(四計)의 동음이의어 사계(四計)하면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듣던 비발디가 떠오른다. 삶의 계획(四計)이 계절의 변화(四計)와 자연스럽게 맞물려 흘러가는 거라 싶으니 ‘사계'가 같은 발음을 가진 것은 필연이었나 싶다.


헨델,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의 3 총사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는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붉은 머리의 사제'라고 불리며 조롱과 멸시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워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된 비발디는 15세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 하였으나 몸이 약해서 교사와 작곡가로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다.


계절의 변화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으로 표현해 낸 비발디의 <사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곡이다. 비발디는 <사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3악장씩을 배치하며 계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서를 담뿍 담아냈다.


겨울이 지난 후 새롭게 맞이하는 활기찬 봄은 경쾌한 악기 합주로, 무더운 태양 아래 지친 만물 위로 쏟아지는 천둥 번개는 격렬하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 가을은 풍요롭고 부드럽게 담아냈으며 춥고 매서운 겨울은 차갑고 날카로운 선율로 폐부를 찌를 듯 표현했다.


비발디가 그려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인생의 계절과 참 많이 닮았다는 걸 그 옛날 사춘기 소녀였던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결국 직접 살아보고 부딪혀 보고 깨지고 다친 후에야 느끼게 된 시간들이 비발디의 사계(四季)와 다르지 않으며 삶의 계획, 사계(四計)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12월만 되면 왠지 모를 답답함과 허무함으로 인해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새해를 부담스러워했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내 신경을 더 잡아끌며 괴롭힌 일은 매년 첫 시작과는 달리 마감 무렵에만 되면 명료하게 해 놓은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한 해의 끝에 서서 '나를 구박이나 하려고 1년을 살아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어떤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더 속상했다.


그런데 한 3년 전부터, 한 해가 끝나도 서운하거나 애달프거나 하는 느낌 없이 새해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담담히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크게 만족해서가 아니라 이젠 정확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며 살 게 되어서인 듯하다. '나의 욕심'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로서의 나'를 바라보며 살기 때문에 새해가 되어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의 경계를 굳이 만들어 가며 억지로 나눌 필요 없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한 자리에 뒤섞이는 것을 바라본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멈추지 않는 이상 내가 살아냈고 앞으로 살아내야 할 모든 날은 하나의 시간 위에 흐르게 될 거라는 걸 안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사이좋게 서로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가볍게 올해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는 중이다.


가는 해. 오는 해. 송구영신
사계(四計)를 가르쳐주신 아버지가 수첩 한 구석에 그려두신 12 간지 동물들. 한 해의 시작.


이전 17화 송곳 이론, 절대 무뎌지지 말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