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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02. 2019

송곳 이론, 절대 무뎌지지 말 것.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을 아침에 걸려 온 작은 언니의 전화로 알게 되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삶에서 설레는 감정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느끼게 될 때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모른다.


‘어머! 너, 작년엔 안 그랬잖아? 그 사이 좀 더 늙은 거니?’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더 천천히 늙고 싶고, 이왕 늙어야 한다면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늙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그게 영 어렵다. 오히려 주책맞고 분위기 없게 늙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젊은 사람 중에는 일부러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지 않거나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별거야? 왜 내 생일도 아닌 남의 생일에 잔치를 벌여야 해?’라며 툴툴대기도 한다. 내 눈앞에서 실제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드라마 속의 까칠한 주인공의 대사로도 있었다.


그냥 크리스마스일 뿐이다. 비판의 눈길과 날 선 마음을 접어두고 대신 즐거운 날로 인식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남의 생일, 내 생일 가리지 않고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는 차원에서라면 크리스마스도, 이브도 즐겁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크리스마스 하면 어렸을 적 선물 받았던 갈색 가죽 허리띠가 떠오른다. 특히나 몸이 말랐던 어린 시절, 그 허리띠는 내게 너무나도 컸다. 가장 안쪽의 구멍에 고리를 걸어도 내 허리에 맞지 않아 휙휙 돌아갔다. 허리띠의 안쪽에 구멍을 하나 더 뚫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구멍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연장통을 열어 뾰족한 송곳을 꺼냈다. 허리띠 간격에 맞춰 연필로 표시한 부분에 송곳을 가져다 댔다. 비싼 가죽 허리띠에 함부로 구멍 자국을 낼 수 없으니 신중해야 했다. 단 한 곳! 정확한 그 지점에 송곳을 대고 망치로 두들겼다. 작은 구멍은 고리를 걸어 허리띠를 맬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아버지의 메모장에서 '송곳 이론'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내게 '송곳'이라는 단어는 구멍 뚫기, 가죽 허리띠, 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과 연관된 의미에서 멈춰 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송곳 이론'은 어려운 일을 추진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지만 집중하여 돌파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다양하게 하면서 완벽하게 끝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어렵고도 중요한 도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중할만한 시간 확보를 위해서라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송곳같이 날카로워져야만 한다. 다른 일들로 신경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게 바로 '송곳 이론'이다.


송곳처럼 단 하나의 일을 낚아채서 그것에만 몰입하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자기 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은 '개구리를 먹어라'라는 말을 종종 한다. '개구리'란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분명 미루어 버릴 일이다. 하지만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미루면서 개구리를 남겨 두지 말고 처음부터 빨리 해치울 것. 송곳처럼 파고들어 끝장을 봐 버릴 것. 이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계획적으로 생활해 볼까 한다.


나이 들어 점점 무뎌진다는 건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사라진다는 뜻이고, 나의 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적어진다는 뜻이다. 세월의 흐름에 재빠르게 발맞추지 못하는 '나의 무딤'을 매섭게 탓할 생각은 없으나 마음을 간추려서 더 이상 무뎌지는 것만은 막고 싶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니니까.


내 삶의 뭉툭해진 부분만을 골라내어 숫돌에 갈아서 뾰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송곳처럼 예리하게 행동하며 삶의 순간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모든 일들과 감정들도 예민하게 읽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원하는 일이 있다면 송곳같이 집중해서 이겨 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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