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결핍이 아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다는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성공 비결로 밝힌 세 가지 항목들은 전부 다 남들이 불리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들이어서 흥미로웠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성공 비결은

첫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

둘째, 초등학교를 중퇴해서 남들보다 학력이 부족한 것.

셋째, 몸이 약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자신의 상황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돌렸을 텐데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첫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돈에 대한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둘째, 초등학교조차 중퇴했기에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무엇이든지 배우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 몸이 약해서 남의 도움을 받아 성과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노력하다 보니 사람을 잘 다루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단점으로 작용했을 요인들이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는 성공을 향한 밑거름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생각의 전환이 그의 인생을 꽃피운 게 분명하다. 결핍을 결핍으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스스로 위대해지는 과정으로 만들어 버린 마쓰시타 고노스케,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을 아버지의 메모장에서 발견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버지와 내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면서도 한 사람을 똑같이 알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러면서 '아, 결핍이라면 우리 아버지도 뒤지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나이 많은 형님 셋과 누님 아래 막내로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품에 한 번 안겨 보지 못한 막둥이는 할머니 평생의 애 닮은 자식이 되었다.

그 후, 아버지 바로 위의 형님이 6,25 사변 때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를 하자 할머니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서 막내만은 군대에 보낼 수 없다고 결사반대를 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여러 사유를 들며 군대를 가지 않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군 미필자로 분류되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사업을 해서 돈을 모았지만 ‘이제 좀 살만하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사업실패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아버지의 결핍은 유복자, 군 미필자, 사업 실패자였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아버지가 의도해서 벌어진 일들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아버지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아버지는 그 모든 상황을 결핍으로 여기고 살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메모장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청춘'이라는 시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굳이 써놓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나이 들어도 '청춘'일 수 있다고 부르짖던 시인, 사무엘 울만의 외침처럼 결핍을 결핍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젊고 푸르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유복자로 자라나 할아버지의 사랑 한번 받지 못했으나 우리 4남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였다. 군 미필자로 그 당시 군사 정권 아래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불이익을 당했을 텐데도 결혼해서 처자식을 건사하며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사업 실패 후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으나 끝내 다시 한 걸음씩 올라와 우리 4남매를 끝까지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아버지의 길지 않았던 인생을 돌이켜 보면 결핍 속에서도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리한 일들은 인생 곳곳에 숨어 있다가 언제든지 불시에 튀어나온다. 열사의 사막, 성난 파도, 혹한의 극치를 한 번도 겪지 않은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편안하게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결핍을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간직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힘든 고난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줄 거라 믿는다. 아버지의 메모장과 일기 수첩은 결핍을 가졌던 한 사람이 자신의 방식대로 그 결핍들을 극복해 나가며 인생을 다부지게 살다 간 증거들이다.

불안, 불편, 불리. 극복해야 할 것들